"검찰출신 민정수석 임명은 과거 회귀" 이랬던 文의 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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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서울 청와대에서 신임 신현수 민정수석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0. 12. 31 청와대사진기자단=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31일 오후 서울 청와대에서 신임 신현수 민정수석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0. 12. 31 청와대사진기자단=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도 중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역시 검찰을 관리하고 통제할 필요성을 절감했는지, 고위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는 과거 체제로 되돌아가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1년 펴낸 『운명』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출범 4년 만에 처음으로 검찰 출신 인사가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는 과거 체제로 되돌아간’ 셈이다. 이에 비(非) 검찰 출신 인사들이 이끌다 파열음만 낸 ‘검찰개혁’의 분위기를 확 반전시키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文 정부 첫 검찰 출신 신현수 민정수석  

신현수(63·사법연수원 16기) 신임 민정수석은 문 정부 출범 이후 초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의 후보군으로 꾸준히 언급됐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현직 검사로는 처음으로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되레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 발목이 잡혔다. “개혁 대상인 검찰이 ‘검찰개혁’을 하기는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1호 과제였다. ‘회전문 인사’의 뿌리로 지목되는 대형 로펌 김앤장 소속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신 수석에 대한 검찰 내부 반응도 우호적이다. 신 수석은 대검 내 2인자인 조남관 대검 차장, 전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각각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연이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 법대 79학번인 윤석열 검찰총장(61·사법연수원 23기)과 대학 2년 선배로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그의 임명은 문 대통령이 그간 민정수석실의 ‘탈(脫) 검찰화’ 원칙을 지켜왔던 점에 비춰볼 때 변화의 신호다. 참여정부에서 2차례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였고, 문 정부 이후 초대 민정수석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대 교수, 김조원‧김종호 전 수석은 감사원 출신이었다.

검찰청사에 사무실 꾸린 박범계 장관후보자

이 같은 변화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로 인해 악화될 대로 악화된 검찰 안팎의 여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박범계 장관 후보자 역시 사뭇 다른 기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그는 지난 31일 아예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을 과천 법무부가 아닌 서초동 검찰에 꾸렸다. 박 후보자는 서울고검 청사에 사무실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여의도에는 ‘민심’이 있고, 서초동에는 ‘법심(法心)’이 있다. ‘민심에 부응하되 법심도 경청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청에 사무실을 정했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준비단 멤버들에게 “업무에 있어서 기본자세는 겸손”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 징계’ 부메랑, 그 이후는?

이는 윤 총장 징계가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비치면서 검사들이 반발하고,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된 상황을 수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청와대는 윤 총장의 정직 2개월 처분을 중단하라는 법원 결정 이후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메시지를 냈다. 추 장관이 제청한 윤 총장 ‘정직 2개월’은 문 대통령이 재가했다. 그러나 법원이 집행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절차적 정당성’마저 힘을 잃게 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대통령 지지율도 30%대 취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세워져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세워져 있다. 김상선 기자

검찰 내부에선 청와대의 의중은 1월 하순께 단행될 ‘고위 검찰 인사’에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검 검사(차장검사)급 이상 인사에서 지난 한해 추미애 장관의 소위 '윤석열 사단 대학살' 기조가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간부는 “윤 총장 징계 과정의 적법성과 관련된 의혹 수사 등의 향방은 서울고검 인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서울고검에 법무부가 수사 의뢰한 대검찰청 '재판부 분석 문건' 사건과 한동훈 검사장 감찰·수사 방해 의혹 사건 등 윤 총장 징계 관련 사건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 아들 서모씨의 탈영 및 부정청탁 의혹과 관련 야당이 항고한 사건도 서울고검이 맡고 있다.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조상철 서울고검장은 추 장관이 지난해 11월 24일 검찰총장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자 고검장 6명 전원이 참여한 반대 성명을 주도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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