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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산모 50명, 아기 감염은 0명…韓의료진이 만든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종운 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팀의 수술 모습. 코로나19 확진 산모를 수술할때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각종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수술을 해야 한다. 전남대병원 제공

김종운 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팀의 수술 모습. 코로나19 확진 산모를 수술할때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각종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수술을 해야 한다. 전남대병원 제공

“선생님, 아기는…아기는 괜찮나요”

지난 19일 경기도의 한 병원 음압 격리 수술실. 갓 아기를 출산한 산모 A(29) 씨는 흐느끼며 아기의 상태부터 물었다. 아기는 힘찬 울음소리로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에 답했다. 의료진은 ”아기는 건강하다“고 알렸다.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임신 중이라 더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였지만, 함께 사는 가족에게서 감염된 사례였다. 평범한 산모들이라면 출산 직후 갓난아기를 가슴에 품고 젖을 물리지만, A씨는 그런 감격의 순간을 누리지는 못했다. A씨와 아기는 각각 격리병실로 옮겨졌다. 아기에 대한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두 번 모두 음성. 아기는 감염되지 않았다. A씨는 “출산예정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라며 “건강하게 출산하도록 도와주신 의사ㆍ간호사 선생님들께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A씨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아기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A씨처럼 임신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에서 출산한 산모가 50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엄마의 태반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돼 태아에게 수직 감염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또 출산 과정에서 엄마의 바이러스에 노출된 아기가 감염되고 며칠 만에 사망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좀 달랐다. 곽진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관리팀장은 ”현재까지 국내에선 신생아가 임신ㆍ출산 과정에서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신생아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은 건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대구파티마병원은 대구ㆍ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봄 3개월간 코로나19 산모 전담 병동을 운영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산모, 자가격리 중이거나 의심 증상이 있는 산모 15명이 이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이 병원의 박학렬 산부인과 과장은 지난 2월 국내 첫 코로나 확진 산모의 출산을 성공시켰다. 20대인 산모는 임신 36주째 확진됐고, 발열과 기침 등 폐렴 증상을 보였다. 박 과장은 “임신 중이기 때문에 해열제 등을 쓰며 증상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하며 출산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산부인과ㆍ마취과ㆍ소아과ㆍ호흡기내과ㆍ감염내과 전문의가 출산을 돕기 위해 뭉쳤다. 음압 격리 수술실을 마련하고 수술 직후 산모와 아기를 추가 접촉 없이 격리 병실로 옮기는 동선도 세밀하게 짰다. 그리고 임신 38주째인 2월 23일 제왕절개 수술로 새 생명을 맞기로 했다. 박 과장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라 병에 대해 알려진 게 많지 않았다. 아기와 의료진 감염 모두 걱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방역 잘하면 문제없다고 서로 격려했다”라고 말했다.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장갑을 세겹 착용해 움직임이 둔해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했다. 1시간여 수술 끝에 아기가 태어났다. 그는 “아기 검사를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라며 웃었다. 모자는 수술 6일 만에 아기와 엄마 모두 건강하게 퇴원해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남대병원도 올해 초부터 감염관리실을 주축으로 코로나19 감염ㆍ의심 산모 처치에 대한 프로토콜을 준비한 덕분에 지난 10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산모의 출산에 성공했다. 수술을 이끈 김종운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 입원이 결정된 뒤 산부인과ㆍ소아과ㆍ마취과 등 관련 부서의 실무자들이 단체 대화방을 개설하고 산모 상태 변화에 따른 대처가 실무자들에게 동시에 전달되도록 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수술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감염 산모를 대하기 어렵지는 않았을까. 김 교수는 “광주ㆍ전남 지역에 감염 산모 분만이 가능한 곳이 많지 않다. 우리 병원이 아니면 맡아줄 병원이 없을 수 있다”라며 “일반 산모와 다르지 않고 많은 산모 중 한 명이라 생각했다. 다만 감염 관리에 주의를 더 기울였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태어난 신생아가 크게 울면서 건강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직전의 순간이 가장 조마조마했다.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기에게 감사했고, 아기가 감염 없이 건강하게 퇴원하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없이 축복받아야 할 선물인 임신과 분만 시기를 코로나19로 인해 불안감으로 보내는 산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며 “언제나 그러했듯 이 또한 지나가고 추억으로 기억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좀 더 기운 내셨으면 한다. 저희 의료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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