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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래 최대 사업 K-FX, 인니 발빼 세금으로 1조5000억 메울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단군 이래 최대 방산 사업’이라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서 해외 파트너인 인도네시아가 철수할 조짐을 보이는데도 정작 방위사업청은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까지 낼 분담금은 8316억원 #2272억원만 지불, 6044억원 미납 #인니, 라팔 등 다른 전투기에 눈독 #"방사청, 플랜 B 대책 마련해야"

한국형 전투기(KF-X) 이미지. 2026년까지 체계개발을 마치는 게 목표다. [한국항공우주산업]

한국형 전투기(KF-X) 이미지. 2026년까지 체계개발을 마치는 게 목표다. [한국항공우주산업]

 23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올해까지 내야 할 KF-X 사업 분담금 8316억원 가운데 실제로 들어온 돈은 2272억원에 그쳤다. 6044억원이 아직 미납 상태이다. 인도네시아는 당초 KF-X의 개발비용 8조 5000억원의 20% 수준인 1조 7338억원을 분담하기로 한국과 합의했다. 2021~2026년 분담금만 9022억원이 더 배정됐다. 현재까지 들어온 2272억원은 인도네시아 측 전체 분담금의 13%에 불과한 액수다.

공동 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가 한국항공우주(KAI)로 파견한 기술진 114명도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귀국한 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9월 23~24일 방사청 협상단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실무회의를 벌였지만, 분담금 미납분에 대해 뚜렷한 합의를 이루진 못했다. 정부 소식통은 “인도네시아가 당초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추가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가 KF-X 사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 전투기를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 전문 주간지인 라트리뷘은 지난 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가 프랑스로부터 라팔 48대를 구매하는 계약의 타결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2019년 10월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19)' 프레스 데이 행사에서 공군이 한국형 전투기(KF-X)의 실물모형을 공개했다. [연합]

2019년 10월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19)' 프레스 데이 행사에서 공군이 한국형 전투기(KF-X)의 실물모형을 공개했다. [연합]

인도네시아 공군은 미국의 F-16(33대)과 러시아의 Su-27(5대), Su-30(11대) 등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투기 숫자도 적을뿐더러 남중국해 섬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가급적 빨리 최신예 전투기를 갖고 싶어 한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방산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는 인도네시아에 전투기 기술을 모두 넘겨준다며 설득하고 있다. KF-X는 아직 도면에나 볼 수 있는 전투기지만 라팔은 현재 운용 중인 전투기”라며 “인도네시아로선 한국에 낸 2272억원을 포기해도 남는 장사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F-X 이미지 [공군]

KF-X 이미지 [공군]

하지만 정부는 설령 인도네시아가 완전히 철수하더라도 KF-X 사업은 그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내기로 한 분담금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도네시아가 생산하기로 한 물량(51대)이 사라지는 만큼 전체 생산 수량이 줄어 단가도 올라갈 수 있다. 이 경우 수출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사청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복잡한 내부 사정만 탓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조립하고 있는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 [방위사업청]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조립하고 있는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 [방위사업청]

지난 10월 국정 감사에서 ‘인도네시아가 다른 전투기를 사 온다는 소식을 흘리는 게 분담금을 깎기 위한 전술인가, 아니면 사업에서 철수하려는 것인가’라고 묻는 신원식 의원에게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은 “KF-X를 완전히 개발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사고 기다리지 않겠다는 차원”이라고 답했다.

방사청은 신 의원에게 낸 답변서에서 “관련 기사들은 인도네시아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면서 “KF-X 공동개발과는 별개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7년부터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진 인도네시아가 KF-X와 또 다른 전투기를 함께 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인도네시아가 구매를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의 전투기 라팔. [로이터=연합]

인도네시아가 구매를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의 전투기 라팔. [로이터=연합]

인도네시아는 당초 합의 내용을 바꿔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추가 기술 이전 말고도 분담금 비율을 20%에서 15%로 낮춰달라거나, 현금 대신 인도네시아가 생산하고 있는 수송기인 CN-235로 대신 내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인도네시아가 계약 파기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신원식 의원은 “인도네시아를 놓친다면 결국 국민 세금 1조 7000억원이 들어가고, 전투기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방사청은 매번 ‘잘 되고 있다’고 답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 B를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방한(訪韓)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양국이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사업(KF-X/IF-X)에서 좋은 결실을 맺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당시 청와대가 밝혔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방한(訪韓)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양국이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사업(KF-X/IF-X)에서 좋은 결실을 맺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당시 청와대가 밝혔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

KF-X는 2026년까지 인도네시아와 함께 4.5세대 전투기를 생산(한국 125대, 인도네시아 51대)하는 사업이다. 8조 5000억원이라는 개발 비용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 방위 사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현재 시제기를 조립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출고할 예정이다. 2022년 상반기 초도비행이 목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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