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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세계적 예술가, 우리가 키우자” 한국 예술교육 씨 뿌린 개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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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중앙포토]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중앙포토]

한국 최초의 음악학자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초대 총장을 지낸 이강숙 한예종 명예교수가 22일 오전 별세했다. 84세.

이강숙 한예종 초대 총장 #손열음·김선욱 등 영재들 길러내 #“사막에 나무 심어 숲 만드신 분”

고인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이던 1992년 한예종 초대 총장직을 제의받고 서울대 사직 넉 달 만에 학교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도 세계적 예술가를 기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예술 교육 개혁에 나선 것이다. 2013년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 고인은 “‘예술학교 설치령’ 하나만 가지고 피아노 한 대 없이 시작했다. 천재지변 발생 시 쓰이는 예비비를 억지로 받아내 문을 열었다”고 했다.

한예종은 예비학교를 만들어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익히도록 했고 박사 학위가 없어도 실력을 보고 교수로 채용해 실기 위주의 교육을 했다. 종합대학이 아닌 전문 예술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믿음이었다.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이경숙, 피아니스트 김대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 등 스타 교수를 집요하게 설득해 한예종에 임용한 이도 고인이었다.

외국에 유학 가지 않고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예술가들이 이렇게 길러지기 시작했다. 한예종에 16세 영재 입학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대학 1학년에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일은 성과의 신호탄이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18세에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후로 음악뿐 아니라 무용·미술·영상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가 배출됐다. 특히 201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는 한예종 출신 4명이 1~3위에 입상했다. 당시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하고 “슈베르트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며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던 이 명예교수는 중간에 피아노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다. 이후 미국 휴스턴대 석사, 미시간대에서 음악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돌아와 작곡과 내에 음악이론 전공을 개설했다. 음악을 학문으로 분석하는 음악학의 개척자로 불린다.

2004년엔 첫 장편 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냈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손열음을 인터뷰해 쓴 소설이다. 2011년엔 음악에 대한 강렬한 꿈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젊은 음악가의 초상』을 출간했다.

한예종 무용원의 홍승찬(예술경영 전공) 교수는 “어떤 일이든 살인적인 인내로 해내셨던 분”이라며 “한예종 개교 당시 기획예산처 공무원을 하도 찾아가 기피 1순위였을 정도로 포기를 모르셨다”고 기억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사막에 나무를 심어 결국 숲을 만드신 분”이라며 “그분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총장님은 교육이 개개인에 대한 가르침을 넘어 전체 터를 일궈야 한다는 걸 직접 보여주셨다. 또한 음악과 예술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설득시키신 분이다”라고 했다. 또 “사회의 몇 안 되는 진정한 어른임에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가득하던 진정한 예술가”라고 추모했다.

고인은 2002년까지 한예종의 2, 3대 총장을 지냈으며 2002년 예술교육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문희자씨, 아들 석재(서울대 인문대 학장)·인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혜화) 장례식장 2호실. 발인 24일 오전, 장지 미정. 02-2072-2010.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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