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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규제심사'도 건너뛰고 후다닥···논란 많은 '3% 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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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재계와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상법 개정안 속 ‘3% 룰’ 등은 지나치게 대주주의 권리를 제한해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3% 룰의 핵심은 상장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식 중 3% 만큼만 인정하겠다는 거다. 대주주 지분이 50%든 60%든 이 중 3%만 인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나마 여당은 이를 조금 완화해 사외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에 한해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개별적으로 3%씩 인정해 주기로 했다.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기업 이사회에서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 속 3% 룰 규제는 행정규제기본법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규제영향분석’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영향 분석 안 하고 통과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따르면 현행 행정규제기본법(7조)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면 다음 각호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제영향분석을 하고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상법의 3%룰은 ‘행정규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규제기본법의 적용 제외를 받았다고 한다. 현행 국무조정실 행정규칙인 ‘행정규제 판단기준’과 규제개혁위원회의 ‘행정규제 및 판단기준’ 등에선 ‘국민의 일반적인 민사, 상사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민법과 상법은 행정규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사실상 대주주의 권리를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임에도 상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받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논리다.

지난 11일 야당 반대 속에 상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1일 야당 반대 속에 상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와 관련,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상법을 비롯해 민법 등 기본 6법은 법무부 소관이어서 별도의 규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 등은 제대로 된 여론 수렴도 하지 않고 너무 멋대로 만든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명예교수는 이어 “모든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법들인 만큼 이렇게 엄청난 제약을 두는 법은 더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고, 법 시행에 앞서 1년가량의 유예기간을 줘 기업들이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비중요규제’로 판정

기업규제 3법 중 하나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그나마 규제개혁위원회의 예비심사를 받았지만, 개정안 속 9가지 주요 개정 항목 모두 ‘비중요 규제'로 판정받아 규제개혁위원회의 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강화 ▶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및 공시의무 부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비심사에서 비중요규제로 분류되면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개정안 속 내용 모두를 비중요 항목으로 결론 내린 건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예로 개정안 중 대기업 총수 등에 의한 일감 몰아주기 억제를 위해 상장ㆍ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20%인 회사’로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넓힌 조항 역시 비중요 규제로 분류했다. 개정안대로라면 현재 규제 대상 대기업 계열사 숫자는 200여 개에서 595곳으로 3배가량 많아짐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8개 '중요 규제' 판단기준중 적어도 3개 충족"
또 현행 행정규제기본법 시행령은 ‘중요규제’를 판단하는 기준을 명문으로 규정해 놓았다. ▶규제의 시행에 따라 규제를 받는 집단과 국민이 부담하여야 할 비용이 연간 100억원 이상인 규제 ▶국제기준에 비추어 규제 정도가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규제 ▶ 이해관계인 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사회ㆍ경제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 등 8가지 항목에 걸리면 이는 중요 규제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안 속 여러 규제가 8가지 중요규제 판단 기준 중 적어도 3가지 이상에는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이수일 국무조정실 규제심사관리관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0대 국회때 정부입법으로 추진돼 2018년 규개위 본회의에서 중요규제로 이미 심사한 바 있다"며 "이미 2년전 심사했었던 안건으로 추가적인 논의의 실익이 적다고 판단돼 비중요규제로 처리키로 규제개혁위원들의 합의를 거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이번 기업규제 3법은 사실상 명백한 우회 입법”이라며 “새로운 규제를 부과하거나, 강화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비용편익분석 등 거쳐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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