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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2월의 대구 동성로처럼 서울 광화문을 비워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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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수도권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역학조사를 통한 감염자 추적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환자 급증에 따른 치료 병상의 부족은 목전에 닥쳤다. 진단검사(Test)-역학 추적(Trace)-치료(Treat)를 포함한 ‘방역 전략 3T’ 중 추적과 치료라는 2개의 카드는 무력화될 위기다. 이제 남은 것은 진단검사를 통한 환자 조기 발견과 조치인데, 감염 고위험군이나 무증상 감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청장년 연령의 검사가 많지 않아 약발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 필자의 우려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역학 조사가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특효약은 시민들의 거리두기뿐이다. 병상 부족은 민간과 공공의 협력적 거버넌스만이 특효약이다.

위기 수준에 비해 거리두기 미흡 #수도권 ‘심폐소생술’ 하듯 임해야

지난 2월 대구에서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쏟아질 때도 병상이 바닥나고 역학조사가 무력화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과감한 전수 검사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공공의료기관인 대구의료원과 국립대병원과 함께 거의 2배의 병상을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했다.

지금 수도권 상황은 여러모로 대구가 겪은 재난의 데자뷔 같지만, 같은듯 많이 다르다. 암에 비유하자면 당시 대구는 수술로 암세포의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도권은 그보다 심각한 전이암 양상이다.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 치료만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수도권은 거리두기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 확산 추세가 지속하고 있다. 2월 말 대구의 시내 이동을 위한 대중교통 이용량은 80% 이상 감소했으나 서울은 지금 30% 감소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정도로는 수도권의 확산 추세를 꺾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위기를 넘어 진짜 재앙 상황으로 간다는 의미다.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안 되는 상황에서는 코로나19 검사소와 임시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지난 2~3월 대구 동성로가 텅 비었던 것처럼 당분간 명동거리와 광화문 네거리를 비워야 한다.

거리두기와 함께 수도권에서 처방할 수 있는 남은 긴급 특효약은 민간 의료기관과 공공 의료기관의 협력적 거버넌스, 중앙과 지방의 협력, 서울과 경기의 협력뿐이다. 우리 지역의 위기, 우리 동네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에 민간과 공공을 나눠 논쟁할 한가한 시간이 아니다. 불안해하는 임산부와 어린이, 갈길 잃은 투석환자, 노인과 정신질환자 등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공공 의료기관에서 거의 강제로 퇴원 당할 환자를 시급히 보호해야 할 때다. 지금은 공공과 민간의 도그마를 버리고 가장 위험한 수도권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경쟁과 대치 대신 공존과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들이 즐비한 수도권에서 의료 체계 붕괴와 중환자 치료 병상이 한계에 왔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기 짝이 없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보상책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과감하게 제시해 절박한 환자 치료를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심장인 수도권에 심폐 소생술 하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지금은 절체절명의 큰 위기다. 구급차가 중환자와 투석환자, 임산부를 싣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광경을 수도 서울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지 않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하게 소망한다.

영국·미국에서 백신 접종 소식이 들리지만, 우리에게 백신은 아직 멀다. 현재로썬 민간과 공공의 협력, 그리고 거리두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1년 내내 고통을 감내한 우리 국민이 이 엄혹한 겨울을 무탈하게 넘기길 기도하는 심정이다.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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