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대학의 빛을 앗아간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0.12.17 00:27

지면보기

종합 33면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상아탑은 빛을 잃었다. 대학이 계몽의 상징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으며, 지식에 대한 검증도 대학이 아닌 외부 연구소나 민간에서도 이뤄진다.

자율의 상실이 상아탑의 핵심 문제
정치·돈에 갇혀…정부·대학 자성을

지능정보사회와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은 기존의 대학이 제공해왔던 학문적 지식보다는 과거의 방식을 뛰어넘어 좀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원한다.

우리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대학문화의 후진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교수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위계 문화나 학생을 향한 갑질, 법인카드 유용 같은 공사 구분 의식 부족 등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상아탑의 빛을 앗아간 진짜 도둑일까. 필자는 ‘자율의 상실’이 지금 대한민국 대학이 직면한 가장 핵심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우리 대학 교육은 정치 진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학이나 과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논의를 비롯해 1년여의 공론화위원회를 거친 대입 전형이 ‘정치 게임’ 과정에서 대통령이 외친 공정이란 이름 아래 그 방식이 멋대로 바뀐다. 교육의 논리는 뒷전이다.

대학 재정은 자율의 바탕이다. 그런데도 최근 등록금 동결과 정부 투자 부족으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생의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대학(사립대 기준 2018년 53.8%)에서 거의 10여년간 등록금이 동결됐고, 정부의 고등교육지원 예산은 GDP의 0.9%(OECD 평균 1.1%, 2016년)에 불과하다. 급기야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의 여파로 올해 대학은 정원 미달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나 시장에 기대어 재정을 확보해야 하는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나 산업 수요에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돈 때문에 대학은 연구의 자율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총장 선거와 임명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학 리더십 형성의 과도한 정치화도 대학의 자율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총장 선거의 과열, 진영 이념 대립, 정부 임명 과정의 지체는 연구와 교육의 자율적 분위기를 흩트리고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오도된 반(反)지성주의의 결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혐오하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사회 분위기 역시 대학인의 소통과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며 대학의 자율을 억압한다.

이렇게 자율을 상실한 한국의 대학은 종말을 맞고 있다. 자율을 상실한 채 정치·시장·돈의 흐름에 길든 지성은 빛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이들이 상아탑의 빛을 앗아간 ‘진짜 도둑’이다.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한국은 10위권에 든 대학이 없으며, 논문의 영향력 평가(CNCI)에서 중국·싱가포르에 뒤처지고 있다. 헬조선·세습사회 같은 말이 등장한 지 오래이며 ‘SKY 대학’ 합격생이 입학을 포기하고 있다. 국내 대학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대내적으로는 자긍심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빛을 잃고 종말로 가는 증거다.

대학의 종말은 지구촌에서 한국사회의 선도력을 무너뜨릴 것이다. 지능 정보화 시대에 사회 경쟁력은 대학의 경쟁력에 비례한다. 지식의 생산과 배분을 담당하는 대학의 종말은 곧 한국사회의 미래를 닫는 일이다. 다가오는 종말을 멈추려면 우선 대학이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자율의 바탕을 상실한 채 끌려다니는 대학이 과연 스스로 대전환의 길을 열 수 있겠는가. 결국 자율의 바탕을 구축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재난 시대에 대학교육을 위한 ‘긴급교육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하되 대학의 리더십에 간섭하지 말고, 대학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물론 투명과 개방 등 일정 부분에서는 금지의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