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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의심돼도 '무사통과'

중앙일보

입력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방역체계가 너무 허술하다. 중국에서 장기체류한 유학생 및 주재원 가족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지만 방역인력 부족과 의심환자에 대한 관리소홀로 곳곳에 구멍이 나있다.

우선 위험지역에서 출국할 때부터 의심환자가 거의 걸러지지 않는다. 홍콩은 출국자들의 체온을 재고 있지만 중국은 우리 정부의 협조요청에도 불구하고 재지 않는다. 중국에는 사스 증세를 보일 경우 출국을 막는 시스템도 없다.

베이징(北京)의 대학들에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하고 있지만 한국 보건당국엔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국립보건원이 지난 20일 외교통상부에 교민사회에서 떠돌고 있는 사스 관련 소문에 대한 진위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정도다.

고열증상을 보이는 출국자에 대해 비행기 탑승을 제지한다는 소문이 돌자 일부 유학생은 아예 해열제를 먹고 타기도 한다. 기내에서 작성하는 검역설문서도 탑승객의 '성의'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여행지를 자세하게 적지 않으며 주거지를 제대로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내 공항에 도착하면 베이징과 광둥(廣東)성에서 입국한 사람에 한해 체온검사를 한다.

그러나 전지역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하루 평균 4천여명. 인천공항검역소 직원 51명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이중 6백명 정도만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스가 맹위를 떨치는 광둥성에서 오래 체류했다 하더라도 검역 설문서를 대충 쓰고 입국공항만 잘 선택하면 얼마든지 방역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이종구 인천공항검역소장은 "위험지역 전노선을 제대로 검역하려면 검역인력이 지금의 두배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스가 터진 뒤 원래 24시간 근무, 48시간 휴식에서 36시간 근무, 36시간 휴식으로 근무체계를 바꿨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배편의 경우 중국에서 오래 산 동포들이 많이 이용하므로 사스 위협에 더 노출돼 있는 편이다. 그러나 입국자 추적조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 동포는 연락처도 분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이달 초 위험지역 입국자 전원에 대해 입국 후 5일과 10일째 전화를 걸어 사스 증상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조사대상이 크게 불어나자 중국의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추적조사를 하고 있다. 보건원 권준욱 방역과장은"모두 조사할 인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스증세를 보여 격리입원한 의심환자의 경우 48시간 동안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1주일간 자택격리를 하게 된다. 자택격리자 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여 실제 사스바이러스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큰 사람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보건소에서 하루 한번 전화로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정도다. 자택격리자가 직장을 다니건, 친구를 만나 술을 먹건 본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김문식 보건원장은 "아직 사스환자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방역인력은 사스 방역과 이질 등 다른 전염병 관리를 하느라 이미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스 발원지인 중국과 가까운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더 적극적인 방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려대 의대 천병철 교수(예방의학)는 "사스의 유입과 확산을 막으려면 철저한 검역은 기본이고 각 병원에 접수된 폐렴 등 호흡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스 증상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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