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도 기뻐하실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0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조 전 장관은 과거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고, 노 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공수처법을 발의했다.
앞서 정의당도 이날 본회의 직전 노 전 의원을 소환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에 찬성하겠다는 당 차원의 입장문을 발표하면서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안의 당론 찬성을 결정했다”며 “공수처 설치를 비롯해 검찰개혁에 대한 고 노회찬 의원의 정신을 매듭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노 전 의원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날 정의당에서는 당론에 따라 심상정·강은미·배진교·류호정·이은주 의원 등 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다만 장혜영 의원은 “민주주의를 위한 검찰개혁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본회의장에서 홀로 ‘기권’을 선택했다. 정의당은 공수처법 표결 당론을 정하기 위해 9~10일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참석하는 전략협의회를 열었다고 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참석자마다 생각이 달라 격렬한 내부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 국면에서 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심상정, 창피한 줄 알아라. 노회찬이 찬성했을 것 같냐”고 적었다. 진 교수는 이어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좋은데 제발 노회찬은 팔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의당 안팎에는 “과연 이번 공수처법 개정안이 노 전 의원이 원하는 법안이 맞냐”는 질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작 노 전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과 여당이 강행 처리한 개정안의 내용이 달라서다.
‘권력 중립’ 중시했던 노회찬
노 전 의원의 과거 발언에는 공수처에 대한 대통령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우려하는 모습이 수차례 드러난다.
지난 2005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공직부패수사처법을 처리하려고 하자, 노 전 의원은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설치되어 ‘이익충돌의 회피’라는 법치국가원리에 반한다”고 반대했다. “야당·검찰 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고, 수사의 진정성이 있어도 대통령과 측근 비리 조사에 있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남겼다. 당시 노 전 의원이 속한 민주노동당은 상설특검법을 추진했다.
20대 국회에서 노 전 의원은 기존의 상설특검 주장 대신 공수처법을 대표 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도입된 상설특검법은 여야 갈등 속에 제도로만 존재하는 게 현실”이란 고민에서였다고 한다.
다만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고민은 노 전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에도 담겼다. 우선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에 정부·여당이 일체 개입할 수 없도록 했다. 대신 대법원장이 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국회가 처장 추천권을 가지면 합의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 나온 안이라는 게 정의당 인사들의 설명이다.
노 전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과 여당이 강행 처리한 공수처법 개정안의 간극은 정의당 내부의 갈등을 가져왔다. 정의당 관계자는 “소수 정당으로 이런 국면에 어떤 결정이 옳은지 논란이 많았다”며 “다만,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소수당의 한계에 대한 김 대표의 결단이 있었다”고 당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