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걸리면 애는 누가 책임지나” 이 걱정에 '마스크 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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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아나운서 최희가 자신의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지난 11월 아이를 출산한 최희가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만나러 가고 있다. 사진 '최희의 노잼TV' 캡처

지난 3일 아나운서 최희가 자신의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지난 11월 아이를 출산한 최희가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만나러 가고 있다. 사진 '최희의 노잼TV' 캡처


코: 코옷물이 눈물이 될 정도로
로: 로(노)랗게 세상이 보이던
나: 나에게 찾아온 출산의 고통

최근 한 네티즌이 임신·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 올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삼행시다. 올 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마음을 졸였던 엄마들이 많다. 감염 우려로 임신 땐 외출 한 번 편히 못 했고, 출산 당시에는 마스크를 쓰고 온몸에 힘을 줬다고 한다. 올해 ‘코로나둥이’를 낳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밖에 못나가니 산전·산후 우울증 찾아와”

임신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임신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A씨(31)는 지난 9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A씨는 임신·출산 과정을 답답함의 연속이었다고 돌이켰다.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다 보니 정말 답답했어요. 임신 중 숨이 차오를 때가 있었는데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니 그 증상이 더 심해지곤 했었죠. 산전·산후로 가벼운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보니 심리적 답답함도 더해졌던 것 같아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그를 힘들게 했다. 다니던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불안에 떨며 병원을 옮긴 일도 있었다. 맞벌이라 매일 이용해야 하는 대중교통도 불안했다고 한다. A씨는 “출산 직전까지도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지 않으면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저히 안되겠다”…출산 직전 마스크 던져버리기도

지난 11월 한 맘 카페에 올라온 글. "코로나19 때문에 전쟁통에 애 낳는 느낌이 든다"는 내용이 있다. 사진 인터넷 캡처

지난 11월 한 맘 카페에 올라온 글. "코로나19 때문에 전쟁통에 애 낳는 느낌이 든다"는 내용이 있다. 사진 인터넷 캡처

지난 9월 강원도 춘천에서 둘째 딸을 낳은 30대 김모씨 역시 2018년 첫째 딸 출산 때와 다른 점으로 ‘막연한 불안함’을 꼽았다. ‘내가 걸리면 어쩌지’라는 불안한 마음에 태교도 제대로 안 됐다고 한다. 김씨는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는 건 불가능하니 뉴스를 계속 찾아보며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신부 요가를 배울 때도 마스크를 쓰는 등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했다는 김씨는 출산 직전 마스크를 벗었다고 한다. “유도분만을 했었는데 촉진제를 맞으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거든요.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던 거예요. 이러다 죽으나 코로나19에 걸려서 죽으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분만실 들어가서는 마스크를 벗었어요. 그런데 요새 마스크 쓰고서 애 낳았다는 엄마들도 많아요. 엄마가 걸리면 애는 누가 책임지겠어요.”

출산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고도 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남편이나 시댁·친정 등 양가 가족의 입실을 금지하는 산후조리원이 많다. 김씨는 “남편도 유리창 너머로만 아이를 보다가 산후조리원을 퇴소하고서야 아이를 안아봤다”며 “산후조리원에서 가족들도 못 만나고, 산모와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다 취소돼 쓸쓸하게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희망적인 세상 보여주고 싶다”

10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고등학교에서 방역당국이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수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10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고등학교에서 방역당국이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수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올 1월 출산을 앞둔 B씨(32)는 산후조리원에서 혼자 있을 막막함에 남편 입실이 가능한 곳을 골랐다고 한다. B씨는 “산부인과를 다닐 때도 초음파를 확인하는 순간에 남편이 같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의 행동 대부분이 통제됐었다. 모든 걸 다 혼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초산인데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클 것 같아서 산후조리원만큼은 남편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출산했다고 불안한 마음이 가시는 건 아니다.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이라서다. A씨는 “신생아는 마스크도 못 써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예방접종·병원검진이 있을 땐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씌우고 나간다”며 “아이에게 밝고 희망적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주 아쉽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 이 시대 엄마·아빠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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