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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이 꺼낸 ‘환매 주택’…13년 전엔 미분양 92% 참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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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취임 이후 ‘로또 분양’의 시세차익 환수를 위한 ‘공공 자가주택’을 추진할 전망이다. 환매조건부 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예비 입주자의 반응이 냉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취임 이후 ‘로또 분양’의 시세차익 환수를 위한 ‘공공 자가주택’을 추진할 전망이다. 환매조건부 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예비 입주자의 반응이 냉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의 휴먼시아 5단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분양한 이 아파트 단지는 전용면적 74~84㎡의 415가구로 이뤄져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오랜 소신인 ‘환매조건부 주택’의 시범 사업으로 추진했던 곳이다. 하지만 예비 입주자들의 철저한 외면에 결국 환매조건부 주택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기도 하다.

국토장관 후보의 ‘로또분양’ 대책 #분양가 싼 대신 시세차익 없어 #2007년 군포 시범사업 결국 포기 #토지임대부 주택도 강남에 2곳뿐 #사업성 악화로 2012년 이후 전무

환매조건부 주택은 언젠가 공공기관(한국토지주택공사·LH)이 되사는 조건으로 분양한 집이다. 최초 분양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파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주변 시세가 아무리 많이 올라도 분양받은 사람은 사실상 시세차익을 포기해야 한다. 대신 분양가는 다소 싼 편이다. 2007년 분양 때는 일반 공공분양보다 2000만원가량 싼값에 입주자를 모집했다.

당시 LH가 환매조건부 주택의 입주자를 모집한 결과 청약 경쟁률은 0.1대 1에 그쳤다. 입주자를 추가로 모집했지만 최종적으로 92%가 미분양됐다. 그러자 일반 분양으로 전환해 입주자를 모집했다. 현재는 환매조건부 주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변창흠

변창흠

서울 서초구 우면동과 강남구 자곡동에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있다. 땅은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은 민간이 소유하는 방식이다. 우면동 LH서초 5단지는 2011년, 자곡동 LH강남브리즈힐은 2012년에 분양했다.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은 변 후보자가 주장하는 ‘공공 자가주택’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LH는 경기도 부천 옥길지구 등에서도 토지임대부 주택을 추진했지만 사업성 악화로 철수했다. 이후 추가로 공급한 토지임대부 주택은 없다.

2014년 입주를 시작한 LH강남브리즈힐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2억2000만원 수준이었다. 2017년 전매제한 기간이 풀리면서 거래가 가능해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현재 시세는 11억5000만~12억8500만원에서 형성돼 있다. 최초 분양받은 사람이라면 10억원가량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년 이후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받는 사람은 시세차익을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임대부 주택의 시세차익을 차단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최초 분양받은 사람이 집을 팔 때는 LH에만 팔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환매조건부 주택과 거의 같은 방식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3일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이 올해 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에 분양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앞으로 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를 거쳐 국토부 장관에 취임하면 ‘로또 분양’을 손보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새 아파트의 분양가와 주변 시세와 차이가 크게 벌어지자 운 좋은 당첨자가 많게는 10억원의 시세차익을 독점한다는 논란이 거셌다.

미국·영국선 ‘환매조건부 주택’ 많지만, 집값 뛰는 한국선 성공 장담 못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전매제한을 최장 10년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논란을 덮으려고 했다. 분양받은 집을 장기간 못 팔게 하면 불확실성을 높이고 시세차익의 실현을 늦출 수는 있지만 공공이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것은 아니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분양가 인하와 시세차익 환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변 후보자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환매조건부 주택은 미국·싱가포르·영국·호주 등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주택시장에선 환매조건부 주택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언젠가 LH가 집을 되살 때는 분양가에 약간의 웃돈을 더한 금액을 집값으로 쳐준다.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과 공시가격 상승률 중 낮은 것을 적용해 웃돈을 계산한다. 현재 시중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연 0.5%까지 낮췄다. 시장금리의 지표가 되는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연 1%를 밑돌고 있다. 이런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최초 분양받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은 거의 없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앞으로 집값이 더 많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면 환매조건부 주택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만일 LH가 집을 되사는 ‘환매 가격’을 비싸게 하면 청약 당첨자에게 ‘로또’를 제공하는 게 된다. 그렇다고 환매 가격을 낮추면 수요자가 꺼린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첨자와 공공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게 성공 과제”라고 말했다.

2006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등에 적용했던 채권입찰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청약 당첨자가 채권을 사도록 해 시세차익의 일부를 환수했다. 주택 분양가와 채권 매입가격을 합쳐 당첨자가 실제로 부담한 분양대금은 주변 시세의 90% 수준이었다.

환매조건부 주택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이 나중에 공공기관에 되판다는 조건이 붙은 주택. 분양가는 싸지만 집값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은 포기해야 한다. 주택의 소유권과 입주권은 있지만 처분권은 없기 때문이다. 전셋값 수준의 분양가로 장기간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점은 장기전세 주택과 비슷하다. 다만 주택 소유 기간에 발생하는 각종 세금은 분양받은 사람이 모두 내야 한다.

토지임대부 주택

소유권을 나눠서 땅은 공공기관, 집은 민간이 소유하는 방식의 주택. 분양가에서 땅값이 제외되는 만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월세처럼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다. 다만 땅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주변 다른 아파트와 비교해 시세차익이 적을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시세차익을 차단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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