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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중국 견제할 ‘태평양 억지구상’에 2.4조원 배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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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의회가 중국을 겨냥해 태평양 일대 미군의 군사력을 증강하도록 법안에 못박았다. 미 상·하원은 지난 3일 합의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국방예산안)에 ‘태평양 억지 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조항을 신설해 약 22억3500만 달러(약 2조42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6일 보도했다. 이는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법적 근거와 예산을 마련해 준 것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국장은 “의회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중국 군사력 대응에서) 전진하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상·하원, 내년 국방수권법에 신설 #핵잠수함 2척 건조 예산도 책정 #“바이든에 대중 강경 대응 신호” #한국에도 동참 압박할 가능성

태평양 억지 구상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사령부 산하의 모든 전력에 해당되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의회의 합의를 토대로 한국을 향해 중국 견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커졌다.

태평양 억지 구상의 원조는 미 의회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년에 내놓았던 ‘유럽 억지 구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령 크림 반도를 침공한 것에 대응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유럽 주둔 미군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번 태평양 억지 구상은 유럽 억지 구상의 ‘인도·태평양 버전’으로 평가받는다. 법안 내 조문에 따르면 태평양 억지 구상은 “동맹국 및 협력국의 안전 보장을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능력과 준비성 향상”을 명시했다. 이를 위해 ▶동맹국·협력국과의 상호 운용성·정보 공유 ▶동맹국·협력국과의 양자·다자 연합훈련을 강화할 분야로 담았다. 이와 관련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정부에서 축소·유예됐던 한·미 연합훈련이 바이든 정부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태평양 억지 구상은 또 ▶무인항공체계 및 전구(theater) 내 순항·탄도·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능동·수동 방어 ▶차세대 장거리 정밀 타격 체계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 및 감시·정찰 체계 등에 대한 투자 확대 방침을 명시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 의회가 중국에 대응할 군사적 연합체에 참여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며 “원칙에 충실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달리 한·미연합훈련 강화와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초기에 한·미·일 3각 협력과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의 실질적 복원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애를 먹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물밑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미 의회는 태평양 억지 구상에 전력 증강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규정하지는 않아 바이든 행정부에 예산 사용의 재량권을 부여했다. 단 국방수권법안에 최신형인 버지니아급 원자력추진 공격잠수함(SSN) 2척의 건조 예산을 책정했다. 당초 미 해군은 1척 건조 예산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의회가 2척으로 늘렸다. 미 의회가 중국의 해군력 강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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