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세평 수집은 ‘사찰’인데…출입국 기록 확인은 ‘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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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법무부의 불법사찰 의혹 공익제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법무부의 불법사찰 의혹 공익제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박상기 전 장관 시절인 지난해 법무부 측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긴급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지기 전 일선 공무원들이 김 전 차관의 출국 정보 등을 실시간 확인했다는 주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직무배제 사유 중 하나인 ‘재판부 불법 사찰’을 언급하며 “무엇이 더 사찰에 가깝나”라는 지적을 제기한다.

국민의힘 “100차례 이상 불법 정보 확인”

국민의힘은 지난해 3월 법무부가 당시 민간인이었던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 금지하기에 앞서 일선 공무원을 동원해 100차례 이상 불법으로 출국 정보를 확인했다고 전날 주장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법무부 출입국 공무원 3명이 김 전 차관에 대해 불법적으로 177회 출국 정보와 부재자 정보 조회를 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사찰 의혹을 즉각 반박했다. 법무부 측은 “중대한 범죄혐의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의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 불출석을 계기로 출국 여부와 관련한 우려 섞인 기사가 연일 보도됐다”고 부연하며 적법하게 김 전 차관 출입국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출입국관리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들며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해 법령에 따라 행해졌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당시 법무부는 기록을 조회한 법무관들을 수사 의뢰했으나, 대검으로부터 수사를 배당받은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전 차관 측 부탁을 받아 기록을 조회했다는 등의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오른쪽) 검찰총장 [뉴시스]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오른쪽) 검찰총장 [뉴시스]

일각선 “어느 게 더 사찰인가” 지적 제기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배제를 결정하며 핵심 사유로 주요 사건 재판부에 대한 불법 사찰 의혹을 들었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공소유지를 위한 참고자료를 사찰 ‘프레임’으로 묶는다며 반박하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재판에서 판사에게 평가를 받는 을(乙)의 입장에서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 공개된 정보를 파악해 대비하는 것은 사찰로 볼 수 없는 취지다.

국민의힘 주장이 나온 뒤 검찰 내부에서는 두 사안 중 어느 게 더 사찰에 가까운지 짚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공개 개인정보인 출입국 기록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것보다도 공소유지를 위해 공개된 자료를 참고했다는 점을 사찰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다.

한 부장검사는 7일 “법무부는 공개된 정보를 모아 공소유지에 참고하는 것을 두고 재판부에 대한 불법 사찰이라고 했다”며 “출입국 기록 등 공개되지 않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실시간 확인한 것은 법령에 따라 적법했다고 하는데, 어느 게 더 사찰에 가깝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현직 검사도 “법무부 주장대로라면 공판 업무 참고 자료 또한 사찰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옛 통합민주당도 과거 출입국 기록 조회에 대한 불법성을 주장했었다. 지난 2012년 통합민주당은 박영선 당시 의원(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등에 대해서 법무부와 검찰이 출입국 기록을 불법으로 조회했다며 “명백한 불법 사찰”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이 공개한 대검 문건 속 판사 주요 평가 보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윤석열 검찰총장 측이 공개한 대검 문건 속 판사 주요 평가 보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윤석열 측, 문건 전격 공개…징계위 사흘 앞

윤 총장 측은 지난달 26일 추 장관의 재판부 사찰 주장 근거가 된 해당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문건에는 출신 학교 및 주요 판결, 세평 등이 적혀 있었다.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윤 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징계위)에서 핵심 쟁점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공판 등 업무상 필요한 정보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백한 만큼 징계위에서도 사찰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추측한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특정 대상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수집한 정보가 아닌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만큼 사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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