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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축하해주면 뭐가 바뀌나···‘신냉전 기싸움’ 푸틴의 침묵

중앙일보

입력

미국을 향한 러시아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하고 통화 외교에 나섰지만, 러시아는 아직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와 ‘기 싸움’에 돌입한 모양새다. '21세기 냉전'의 서막이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AP=연합뉴스]

중국도, 터키도 축하 메시지…러시아는 여전히 침묵 

러시아는 미국 언론들이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보도한 지난 7일(미국시간) 이후 12일이 흐른 현재까지 축하 메시지는커녕 원론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터키 등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이른바 ‘스트롱맨’의 국가도 속속 축하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지만 러시아는 요지부동이다. 4년 전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의 당선 확정 몇 시간 만에 축하 성명을 발표했던 점과 비교하면 더욱 눈에 띄는 행보다.

눈치를 보던 중국도 조심스럽게나마 입장을 밝힌 상태다. 지난 13일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줄곧 미국 국내와 국제사회가 이번 미 대통령 선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시해 왔다”며 “우리는 미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 바이든 씨와 카멀라 해리스 여사(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를 표한다”고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첫 공식 메시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친(親) 트럼프' 정상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당신의 당선을 축하한다. 미국민의 평화와 복지를 기원하는 진심 어린 소망을 전한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경우 아미우톤 모우랑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바이든의 승리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든에게 축하 인사를 전해야 한다”고 지난 13일 말했다.

세계 주요 국가 중 침묵을 이어가는 곳은 러시아 외에 멕시코 정도가 남았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 당국이 선거 승자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불가피한 미· 러 대결 구도 …기선제압 나섰나 

러시아가 침묵하는 배경에는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유화 제스처를 보낸다고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러시아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종의 외교적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바이든은 지난달 말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국가가 어디냐'는 질문에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꼽으면서 “우리의 안보와 동맹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참석 차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참석 차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시사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지난달 22일 마지막 TV토론에서 러시아, 중국, 이란 등 외국 적대세력의 선거개입 시도를 거론하며 "내가 당선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주둔 미군을 감축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이 서유럽 국가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 복원'을 공언한 점도 러시아를 불편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가망 없는 관계 개선을 시도하느니 바이든 행정부를 러시아의 ‘적’으로 상정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게 국내 정치적으로도 더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와 궁합 잘 맞던 푸틴…바이든이 불편할 수밖에 

푸틴 대통령으로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도 외면하기 어렵다. 2016년 미국 대선의 막판 변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의 배후에도 푸틴 대통령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이들은 가까웠다.

트럼프 역시 푸틴을 사적인 자리에서 “강력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며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단순한 친분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부동산 사업이 러시아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소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포기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러시아는 입장 표명을 최대한 늦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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