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이통사 4조1000억 내라"…주파수 재할당 가격 일방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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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동통신 3사에 3G와 LTE 주파수 재할당 대가로 4조1000억원을 요구했다. 사진은 이통3사 이미지. [중앙포토]

정부가 이동통신 3사에 3G와 LTE 주파수 재할당 대가로 4조1000억원을 요구했다. 사진은 이통3사 이미지. [중앙포토]

정부가 이동통신 3사에 3세대(G)와 LTE 주파수를 재할당 해주는 대가로 4조1000억원을 요구했다. 이통사는 "실현 불가능한 액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3사를 상대로 '주파수 재할당 방안 공개설명회'를 열고, 내년에 이용 종료되는 주파수 310㎒ 대역폭에 대한 재할당 가격과 계산법을 공개했다. 정부 안에 따르면 이통3사가 3G와 LTE 주파수를 향후 5년간 지금과 동일하게 사용하려면 4조10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당초 과기정통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재할당 대가로 5조5000억원을 반영했던 것보다는 1조원가량 낮아졌지만, 이통3사가 제시했던 재할당 적정 가격 1조6000억원보다는 2.5배가 넘는 액수다.

"5G 기지국 많이 지으면 3G·LTE 재할당 가격 깎아준다"  

과기정통부는 재할당 가격을 산출할 때 5G 무선 기지국 구축 수량을 연동했다. 이통사가 5G 기지국을 많이 지을수록 3G와 LTE 주파수 재할당을 싼값에 받을 수 있게 된다. 2022년까지 기지국을 15만국 이상 구축할 경우 가장 싼 가격인 3조2000억원을 납부하면 된다. 12만국 이상 15만국 미만일 경우는 3조4000억원, 9만국 이상 12만국 미만이면 3조7000억원으로, 5G 기지국이 적을수록 납부 금액이 점점 높아진다. 현재 이통3사의 5G 기지국 수는 사별로 5만국 내외다. 이 경우는 3만국 이상 6만국 미만 구간에 해당해 4조10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5G 기지국 구축 수에 따른 주파수 재할당료. 현재 이통3사는 각 사별로 5만국 정도 구축해 4.1조원을 내야 한다. [과기정통부]

5G 기지국 구축 수에 따른 주파수 재할당료. 현재 이통3사는 각 사별로 5만국 정도 구축해 4.1조원을 내야 한다. [과기정통부]

이통사 "2023년까지 4.5만국 지으라더니…현실성 없다"

이통사들은 이런 정부 안에 대해 "현실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방식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관계자는 "5G 주파수를 할당받을 때, 정부가 이미 이통사별로 의무 기지국 구축 수를 정해줬고, 그게 2023년까지 4만5000국 정도였다"면서 "현재까지 3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해 5만국 내외를 구축했고, 2022년 전국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15만국을 지어야 최저가에 재할당하겠다는 정부안은 지나친 것을 넘어 불가능한 요구"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5G 기지국 구축과 3G·LTE 재할당을 연동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5G 가입자가 많아지면 3G와 LTE 주파수 대역의 가치가 그만큼 낮아진다"면서 "이통사가 5G 기지국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게 정부는 재할당 대가를 낮추는 게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가 재할당 가격과 산법을 공개하면서 공청회나 공개 토론회가 아닌 설명회를 연 것에 대해서도 이통사 측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그간 수차례 공동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주파수 재할당 적정 가격에 대한 업계 의견을 피력했지만 과기정통부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 설명회의 방식을 택한 것도 공식 발표 전에 이통사와 만났다는 생색을 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주파수 재할당 대역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파수 재할당 대역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 "정부의 재량권 일탈·남용…재고해야"

전문가들은 정부 안에 대해 "향후 법적 분쟁 가능성이 큰만큼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재할당 대가의 산정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부담금 산정원칙(조세법률주의)에 반하거나 재량권의 일탈·남용의 우려가 있다"며 "이대로 결정하면 중대한 하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국회에서 올해 안에 법 개정과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할당 대가 산정 기준을 명확히 마련한 뒤에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ICT 전문가인 이종관 박사(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는 "정부 안에 재할당 정책목표나 지향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전파법 해석에 대한 이견과 법적 불확실성도 존재한다"며 "이해 당사자 간 합의도 되지 않은만큼 향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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