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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일 4촌 결혼 허용하는데···'8촌이내=근친혼' 민법 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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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8촌 이내 혈족간 혼인을 금지한 민법 809조 1항 위헌소원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8촌 이내 혈족간 혼인을 금지한 민법 809조 1항 위헌소원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시스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 민법 제 809조 제1항

혼인이 제 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혼인은 무효로 한다- 민법 제 815조 2항  

8촌 이내 혈족끼리의 결혼을 근친혼으로 여겨 금지하고 있는 현행 민법은 헌법이 보장한 ‘혼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인가.

헌재 ‘8촌 이내 혈족간 결혼 금지’ 공개변론

헌법재판소는 12일 오후 민법 제809조 1항 등의 위헌 소지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위와 같은 법 조항 때문에 혼인 무효확인소송을 당한 A씨가 제기한 위헌소원 사건에 따른 의견 청취다.

A씨는 지난 2016년 B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얼마 뒤 B씨가 A씨와 자신이 6촌 사이라는 이유로 혼인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1심 법원은 민법 제809조와 제815조를 근거로 삼아 이들의 혼인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패소한 A씨는 항소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결국 법의 타당성을 따져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A씨 측은 법이 규정한 ‘8촌’이라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36조(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은 4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며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도 했다.

“미국·영국·일본 등 4촌 이상 혼인 허용”

A씨 측은 ‘8촌 이내 혼인 금지’가 사회 질서나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8촌 이내 혼인’에 따른 자녀의 유전질환 우려도 일축했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6촌 내지 8촌인 혈족 사이의 혼인 경우에는 그 자녀에게 유전 질환이 발현된 가능성이 비근친혼 자녀의 경우와 거의 차이가 없음에도 심판 대상 조항은 유전학적 위험성을 근거로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법이 규정한 ‘혼인 금지’ 범위가 오늘날 친족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8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가족으로 본 것은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4대까지 제사를 지내던 문화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종갓집에서도 그런 문화가 줄고 있다”며 “직계혈족 간 근친혼 금지는 가족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나 그 이상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까지 사회적·심리적 목적을 이유로 혼인을 제한하면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또 “근친혼과 유전 질환의 발병률 사이에는 인과관계도 없다”며 “설령 유전 질환이 발생하더라도 혼인 당사자가 스스로 감당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 측인 법무부는 이 법이 ‘사회 공동체 질서에 부합한다’며 A씨 측에 맞섰다. “해당 조항은 우리나라의 친족 관념 및 법감정을 존중하고 유전학적 고려까지 했다는 점에서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 개인화된 것은 맞지만 혈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초고 민법 제777조 제1호도 8촌 이내의 혈족을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근친혼 금지는 친족관념과 혼인질서가 뒤섞이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유전학적 측면에 대해서도 “근친혼의 경우 유전적 질병의 발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 인정되는 이상, 이를 고려함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친족관념 존중, 유전학적 고려…위헌 아냐”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종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친혼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는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므로,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재량 사항이고, 입법자가 정한 근친혼 금지의 범위가 외국 입법례에 비하여 지나치게 넓다고 해서 반드시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직권지정 참고인으로 출석한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도 “가족 개념에 변화가 있다 해도 여전히 문중·당내를 기반으로 한 제례·상례가 유지되는 한, ‘8촌이 곧 근친’이란 관념은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한 관념”이라고 법무부 편에 섰다. 그는 다만 “혼례문화는 제례·상례와 달리 자기중심적 친족관계의 경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에 한해 '8촌이 곧 근친'이란 관념이 오늘날 보편타당하다고 단정키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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