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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단독/‘인권정당’ 민주당 이해찬의 망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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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인권정당’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큰 망신을 당하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상 최초로 특정 집단(장애인)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이해찬 전 대표와 당직자들에게 인권위의 최고 (제재) 조치인 ‘권고’ 결정문을 12~13일 중 발송할 것”이라고 했다. 이해찬은 지난 1월 15일 민주당 유튜브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고 발언,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의해 인권위에 진정을 당한 끝에 10개월 만에 대가를 치르게 됐다.

잇단 장애인 비하에 인권위 철퇴 #‘집단’ 비하에 처음 ‘불법’ 인정 #‘사람이 먼저’란 당 원로에 첫 적용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비하했다고 인권위의 조치를 당한 정치인은 없었다. 인권위가 “인권위법상 장애인 같은 ‘집단’은 구체적인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정이 제기될 때마다 각하해줬기 때문이다.

당장 이해찬 본인부터 2018년 12월 28일 “정치권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는 발언으로 진정을 당했지만, 인권위는 1년 가까이 시간을 끌다 지난해 12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각하해버렸다. 면죄부를 받은 이해찬은 거친 말버릇을 고치지 않고 1년여 만에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는 말로 장애인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고 말았다. 격분한 장애인들은 인권위에 재차 진정을 제기하면서 인권위의 각하 남발에 행정소송을 걸 뜻도 내비쳤다. 이런 압박이 먹혔는지 인권위는 1년 만에 180도 다른 결정을 내린다. 인권위 사상 최초로 장애인차별금지법 (32조)을 적용, ‘집단’(장애인)에 대한 비하에 (제재) 조치를 결정한 것이다. 그것도 최고 수위 조치인 ‘권고’다. 인권위 측 입장이다.

“여권의 좌장인 사회 지도층 인사가 장애인 폄하 발언을 반복해서 한 사실을 심각히 봤다. 그 심각성을 국민에 각인시키고 정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누구든지 장애인을 모욕하거나 비하하면 안 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 32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이해찬에게 권고를 결정했다.”

일반인도 아니고 7선 의원에 국무총리에다 민주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낸 이해찬이 특정 집단(선천적 장애인)을 비하한 이유로 인권위의 권고 조치를 받은 첫 기록을 세운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는 민주당의 전 대표가 이런 기록을 보유하게 됐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해찬이 문제의 발언을 한 시점은 1월이다. 그런데 인권위의 ‘권고’ 결정문이 이해찬에게 전해지기까지는 근 열 달이 걸렸다. 현행범으로 딱 걸린 사안인데 왜 이리 시간이 걸렸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이해찬은 공문을 받는 즉시 90일 이내에 교육 이행 계획서를 인권위에 제출해야 한다. 계획서가 부실하면 권고 불복으로 간주돼 법무부 장관이 시정 명령을 내리며, 이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인권위는 이런 상황을 언론에 발표할 수도 있다. 이해찬이 교육 안 받고 빠져나가긴 어렵게 됐다.

이해찬의 수모는 진중권 말마따나 “스미골로 착한 척하다가 결국 절대 반지 들고 골룸으로 몰락해가는” 민주당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은 정권을 잡은 지난 3년 반 내내 노동자, 여성, 청년, 위안부 등 약자를 존중한다고 노래를 불러왔다. 하지만 그 약자들이 진실을 폭로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고 짓밟았다.

창업주인 친문 의원 이상직의 전횡에 항거하다 해고된 이스타 항공 노동자들, 박원순 시장에게 성추행당한 여성 비서,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을 폭로한 20대 청년,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유용 의혹을 처음 제기한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는 하나같이 ‘적폐’ ‘토착 왜구’로 몰려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는 민주당의 구호는 실은 ‘우리의 이해를 해치지 않는 사람만 먼저다’ 는 뜻이었음을 국민은 알아챘다.

그럼에도 야당이 힘을 못 쓰니 민주당의 오만과 ‘선택적 존중’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치와 제도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당장 친여 인사들이 포진한 인권위가 정권 핵심인 이해찬에 초유의 권고 결정을 내린 것은 진영논리, 패거리 의식만으로 사실과 논리를 뭉개기엔 한계가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정권의 협박 속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낸 감사원의 월성 1호기 폐쇄 감사, 그에 근거한 대전 지검의 광폭 수사,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가 끼었음에도 김경수 2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법원 역시 아직은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이런 움직임을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저 오만한 여당의 전횡을 꺾을 수 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