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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국방장관 경질…펜스·매코널 불복 대열 합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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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자문단 위원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자문단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쫓아낸 백신 전문가 릭 브라이트 박사도 포함됐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자문단 위원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자문단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쫓아낸 백신 전문가 릭 브라이트 박사도 포함됐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핵심 각료를 전격 경질하고 정권 인수인계 거부를 지시하면서 정치적 내전으로 번지고 있다. 또 침묵했던 공화당 지도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불복 대열에 합류하면서 친트럼프 진영의 조직적 불복으로 확산하며 사태가 커지고 있다.

‘조마조마 72일’ 우려가 현실로 #백악관 “바이든 인수팀에 협조 말라” #바이든 인수팀 “법적 대응 검토” #바 법무장관, 부정투표 조사 지시 #선거범죄부서 책임자 항명 사퇴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매우 존경받는 크리스토퍼 C 밀러 대테러센터장을 국방장관 대행으로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경질을 통보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올리기 5분 전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에스퍼 장관에게 전화로 경질을 알렸다. 두 달여 뒤 퇴임하는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전격 교체한 건 미국 정치에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조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경질에 나선 건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았던 각료에 대한 보복 인사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측과 정면 대결하겠다는 마이웨이 통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미 언론들이 내놨던 ‘조마조마한 72일’에 대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2019년 7월 취임 후 에스퍼 장관은 ‘예스퍼(Yes-per)’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예스맨’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 6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현역 군인을 투입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공개 반대하며 눈 밖에 났다.

NYT “이란 등 적대국에 군사작전 우려”

에스퍼 경질을 놓곤 ‘보복+α’가 아니냐는 우려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충성파 국방장관을 앉혀놓은 뒤 독단적인 군사적 조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NYT는 “국방부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이란이나 다른 적대국들에 대해 공개적 또는 비밀리에 작전을 개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가 멍든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국가안보를 사보타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눈엣가시 FBI·CIA국장 해임설 돌아

에스퍼 국방장관, 해스펠 CIA국장, 레이 FBI국장(왼쪽부터)

에스퍼 국방장관, 해스펠 CIA국장, 레이 FBI국장(왼쪽부터)

미국 언론들은 에스퍼 경질이 시작이라는 보도도 내놨다. CNN은 대선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과 엇나갔던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장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장의 경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내쳤던 이날 그간 침묵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 지원을 위해 입을 열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상원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00% 그의 권한 내에서 부정행위 의혹을 살펴보고 법적 선택권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트위터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이건 끝나지 않았다”고 올렸다. 4년 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때 트럼프 당선인을 위협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이날 “바이든 당선인 확정은 시기상조”라며 대선 결과 확정을 거부했다. 매코널의 불복 대열 합류는 사실상 공화당의 합류를 의미하는 만큼 대선 불복은 트럼프 대통령의 ‘나홀로 불복’으로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의 연방조달청(GSA)은 9일 “대선 결과를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2000년 클린턴 행정부가 정한 관련 연방법과 관례를 지키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선인 인수위가 인수인계 작업에 돌입하려면 GSA가 대선 결과를 공식화하고 인수위에 활동자금 630만 달러(약 7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성명은 대선 결과가 미확정이니 돈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정부 부처와 기관의 고위 관료들에게 바이든의 인수팀에 협조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GSA의 대선 결과 확정 거부로 바이든 당선인 캠프는 다른 나라 정상과 통화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부 차원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했던 부정투표 의혹에 대한 조사를 일선 검사들에게 지시하자 선거범죄 담당 고위 검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바 장관은 전국 검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투표 부정에 대한 실질적 혐의가 있다면 선거 결과가 확정되기에 앞서 이를 추적하는 것을 재가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공직자청렴수사국(PIS) 산하 선거범죄부서 책임자인 리처드 필저 검사는 이런 지시가 이뤄진 지 몇 시간 만에 항의 표시로 돌연 사임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바 장관이 선거 결과가 이의 없이 확정되기 이전에는 부정선거 수사에 불개입해 온 40년 된 정책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또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당파적 두려움이나 치우침 없이 공격적이고 부지런하게 연방 선거법과 정책, 관례를 집행하기 위해 여러분과 일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조직적 인수인계 거부 움직임에 바이든 인수팀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인수팀은 또 GSA의 지원이 필요 없는 백악관 수석보좌관과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TF) 등의 자리를 먼저 임명하겠다고 예고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서유진·백희연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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