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걸리면 영업비밀 다 내라니”…상의, 집단소송법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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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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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경영 단체의 공식 반대 의견이 나왔다. 한국 법체계에 맞지 않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전 연구가 부족하다는 게 반대 주장의 핵심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고 8일 밝혔다.

대한상의는 의견서에서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국내 법제에 영미법 제도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 도입할 경우 발생할 법체계 간 충돌과 제도 혼용의 문제점에 대한 입법 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특히 집단소송 법안에 대해 “미국의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면서, 미국에는 없는 원고 측 입증책임 경감을 추가했다”며 “이는 민사소송의 입증책임 분배 원리에 맞지 않고 세계적 유례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입증책임이란 소송을 낸 쪽(원고)에게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근거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미국에서 원고의 입증 책임을 덜 묻는 소송은 환경오염피해와 같은 특수 사안에 해당한다. 이에 상의는 “민사상 모든 손해배상책임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소송에 입증 책임 경감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집단소송법안 중 기업 영업비밀을 예외 없이 제출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대한상의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한상의는 “영업비밀 제출 의무는 특허침해 소송과 같은 특수 사안에만 부과하는 것이지 일반 손해배상책임을 다투는 집단소송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뉴스1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뉴스1

집단소송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한상의는 반대했다. 집단소송은 쟁점이 복잡하고 배상금액을 정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상의는 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가 함께 도입되면 기획소송, 연쇄 도산 등으로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소(濫訴)방지 규정 삭제 등 소송요건 완화 장치에 대한 우려다.

대한상의는 의견서에서 “현재 코카콜라 등 미국도 기업의 준법 경영 노력과 무관하게 집단 소송 건수가 급증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적절한 남소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 주체들의 공감성ㆍ수용성, 제도의 실효성이 충족될 수 있도록 입법 영향평가를 비롯한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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