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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이 탱크 박살냈다…세계가 무시한 이 전쟁서 벌어진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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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은 1904년 2월부터 이듬해인 1905년 9월까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일어났다. 러시아와 일본은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엔 변방이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러·일 전쟁은 나중에 알고 보니 10년 후 유럽과 세계를 뒤흔들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졌던 참호전 참상의 티저(예고편)였다.

[이철재의 밀담]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모습 보여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 분쟁

아제르바이잔의 드론인 TB2 바이락토르가 아르메니아의 다연장 로켓인 BM-30 스메르치를 타격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아제르바이잔의 드론인 TB2 바이락토르가 아르메니아의 다연장 로켓인 BM-30 스메르치를 타격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특히, 뤼순(旅順) 공방전이 그랬다. 러시아는 중국의 뤼순을 요새로 만들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콘크리트 토치카에 당시 최신 무기였던 기관총을 배치한 것이다. 뤼순을 뺏기 위해 일본군은 1904년 8월부터 1905년 1월까지 총검을 앞세워 총공격을 벌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기관총 화망에 걸렸다. 철조망에 걸려 전진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군 시체는 산처럼 쌓였다.

나중에 전술을 바꾼 일본군은 정면 공격보다는 포격으로 러시아의 고지를 하나씩 점령했다. 더군다나 러시아 해군이 일본 해군에게 패했다. 결국 뤼순의 러시아 수비대는 항복했다.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군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 [Public Domain]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군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 [Public Domain]

당시 영국ㆍ프랑스 등 유럽 각 국가의 장교들은 참관단 형식으로 뤼순 공방전을 지켜봤다. 하지만 철조망과 기관총이 앞으로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짐작도 못 했다. 러·일 전쟁이 2류 국가간 전쟁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들도 철조망과 기관총의 위력을 몸소 겪었을 땐 이미 늦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부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 일어난 국경 분쟁(아-아 분쟁)이 21세기 러·일 전쟁이 될 판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군사 강국도 아니며, 군사 혁신을 주도하지도 않는 나라다.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와 일본의 위상만도 못하다. 하지만 이 국경 분쟁에선 새로운 전쟁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전쟁터의 주역으로 떠오른 드론 

아-아 분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양상은 드론전이다. 개전 첫날인 9월 27일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의 T-72 탱크와 BMP-2 보병 전투차량을 공습으로 파괴했다. 그런데 이 공습은 터키제 드론인 TB2 바이락타르가 주도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 포대를 공습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드론의 모습이 보인다. [AP=연합]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 포대를 공습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드론의 모습이 보인다. [AP=연합]

터키의 방산업체인 칼레바이카르가 2014년부터 생산하는 TB2 바이락타르는 길이 6.5m, 날개폭 12m의 드론이다. 최대 150㎏을 실을 수 있으며, 최대 속도는 시속 220㎞로 날 수 있다. 27시간 비행이 가능하다. 4곳의 하드 포인트에 터키제 대전차미사일과 70㎜ 로켓, 정밀유도무기를 달 수 있다.

드론으로 상대를 공습하는 능력은 미국만 가진 것으로 알고들 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도 드론 공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자폭형 무인기와 함께 무장 드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재래식 전장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군사 전문 월간지인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중국이나 터키가 드론을 값싸게 수출하면서, 드론 공습은 이제 어느 정도 규모의 국가에선 보유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이라며 "동남아시아도 드론을 자체 개발할 정도로 보편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터키제 드론 TB2 바이락토르. [위키피디아]

터키제 드론 TB2 바이락토르. [위키피디아]

지난달 14일엔 아제르바이잔이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제 드론 하롭이 아르메니아의 지대공 미사일인 S-300 2개 포대를 박살을 냈다. 동영상을 보면 하롭이 하늘에서 각각 지상의 아르메니아 미사일 차량과 레이더를 향해 내리꽂는 장면이 나온다. 하롭은 하피2라고 불리는 드론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다 목표에 다가가 자폭한다. 주로 적의 방공망을 노린다.

러시아제 S-300은 꽤 괜찮은 방공 체계다. 그런데 아제르바이잔의 드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각에선 아제르바이잔이 AN-2를 드론으로 개조한 뒤 띄워 아르메니아의 방공 시스템 소재지를 파악하는 꼼수를 썼다고 분석하고 있다. AN-2는 북한이 특수부대 대남 침투 용도로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목제 복엽기다. 아제르바이잔의 터키제 TB2 바이락타르는 지난달 30일 아르메니아의 장거리 다연장로켓인 러시아제 BM-30 스메르치를 파괴했다.

이스라엘제 자폭 드론 하롭. [위키피디아]

이스라엘제 자폭 드론 하롭. [위키피디아]

상당수 전문가는 아-아 분쟁을 보고 ‘탱크 무용(無用)론’을 내놓고 있다. ‘지상전의 왕자’라 불리는 탱크는 그동안 아파치와 같은 대전차 헬기에 취약한 데다, 이제 드론이라는 또 다른 천적을 만난 셈이다. 탱크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해병대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겨루기 위해 무거운 탱크를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탱크 무용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드론 vs 탱크…누가 더 우세할까 논쟁도

그러나 아직 탱크 무용론은 섣부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군사 전문 온라인 매체인 밀리터리타임스는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은 미국 육군과 같이 다양한 전술적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갑 부대의 피해가 컸다고 분석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특히 아르메니아는 방공 능력이 약해 아제르바이잔의 드론에 많이 당했다”며 “훈련과 전력이 많이 뒤처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제르바이잔 드론이 아르메니아 기갑차량을 공습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아제르바이잔 드론이 아르메니아 기갑차량을 공습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드론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에도 걸림돌은 있다. 아제르바이잔에 드론을 대주고 있는 터키는 핵심 부품을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캐나다가 터키제 드론이 아-아 분쟁에서 사용된 사실을 들며 금수 조처를 내린 것이다. 캐나다는 분쟁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정밀유도무기의 세계화…미국만 가진 게 아니다

아-아 분쟁에선 드론 이외에 또 다른 주역이 있다. 정밀유도무기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달 2일 나고르노-카르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다리를 끊기 위해 탄도탄을 쐈다. 근처 CCTV에 잡힌 영상에 따르면 탄도탄은 다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크기와 모양이 이스라엘제 로라와 비슷하다. 아제르바이잔은 2017년 이스라엘에서 로라 50여 발을 사들였다.

아제르바이잔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로라가 아르메니아의 다리를 타격하고 있다. [FJ 트위터 계정 캡처]

아제르바이잔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로라가 아르메니아의 다리를 타격하고 있다. [FJ 트위터 계정 캡처]

로라는 ‘장거리 포격(Long-Range ArtilleryㆍLORA)’의 영문 약자다. 최대 사거리가 400㎞이며 원형 공산오차(CEPㆍ10발 공격했을 때 5발이 들어가는 원을 그렸을 때 그 반경)가 10m 정도다. GPS로 유도하며, 목표물은 적외선 카메라로 찾는다. 5~10m 길이의 탄두는 약 500kg으로, 버전마다 180~300km급 사거리를 갖춘 최신예 탄도탄이다.

한국 육군이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배치한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제거하기 위해 긴급히 개발한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는 이스라엘의 로라를 많이 참조했다.

그러자 엿새 후인 지난달 8일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제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OTR-21 토치카와 BM-30 스메르치로 반격했다. OTR-21 토치카는 최대 사거리가 185㎞다. CEP는 70m다. 1970년대 옛 소련 때 무기라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스라엘제 단거리 탄도미사일 로라. [위키피디아]

이스라엘제 단거리 탄도미사일 로라. [위키피디아]

하지만 BM-30 스메르치는 다르다. 300㎜ 구경의 로켓을 최대 100㎞ 거리까지 쏠 수 있다. 12발을 모두 발사하는 데 45초면 충분하다. 적 후방의 전략 시설을 타격하는 게 개발 목적이어서 CEP는 10~30m로 추정된다. 류성엽 전문위원은 “이제 미국이 아니더라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의 정밀유도무기를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트위터에도 열린 전선(戰線) 

아-아 분쟁의 셋째 양상은 선전전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양측 모두 소셜미디어(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매일 전선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퍼뜨리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매일 전선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퍼뜨리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유튜브 계정]

Oryx라는 네티즌은 매일 트위터에서 아-아 분쟁에서 양측의 피해를 트위터블로그에서 중계하고 있다. 이 네티즌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소셜미디어에 전과라고 올리는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양 측은 상대방을 타격하는 동영상을 매일 업데이트한다. 그래픽을 이용해 전과를 자랑하기도 한다. 걸프전에서 뉴스 전문 방송사인 CNN이 현장 라이브 중계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21세기는 유튜브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CNN을 대체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수도 바쿠의 중심가에 대형 디지털 전광판을 세우고 전선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여론전을 펴고도 있다.

아르메니아군 병사가 아제르바이잔 포격으로 파괴된 민가 옆을 지나고 있다. [AP=연합]

아르메니아군 병사가 아제르바이잔 포격으로 파괴된 민가 옆을 지나고 있다. [AP=연합]

그렇다면 아-아 분쟁이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이 뭘까. 북한이 아-아 분쟁을 유심히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드론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고, 열심히 개발 중이다. 북한은 방사포의 정확도와 사거리를 높이고 있다. 또 인터넷을 통한 심리전과 선전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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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의 일이라고 아-아 분쟁을 허투루 봐선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영국ㆍ프랑스가 러·일 전쟁을 무시하다 나중에 참화를 겪은 100년 전 일을 되풀이할 수 있어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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