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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밀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삐걱거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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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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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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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당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벨퍼 국제관계센터 소장을 맡고 있던 애슈턴 카터는 동료들과 함께 논문을 썼다. 제목은 ‘소련의 핵분열: 소련 해체에서 핵전력의 통제’였다. 소련이 무너진다면 미국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벨라루스에 배치된 소련 핵무기가 남용되지 않도록 이들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정책 대안을 담은 내용이었다. 소련은 그때 해체 직전의 상황이었다.

미국 1991년 소련발 핵위기 때 #37세 카터 분석 믿고 위기 넘겨 #한국에도 자칭 키신저는 넘쳐나 #관리자 아닌 창의적 전략가 필요

며칠 후 샘 넌(민주당)·리처드 루거(공화당) 미 상원의원이 카터를 의원 조찬 모임에 초대했다. 카터는 이 자리에서 소련발 핵확산 가능성에 대해 브리핑했다. 주의 깊게 들은 넌·루거 의원은 조찬 후 아흐레 만에 협력적 위협 감축(CTR) 프로그램을 담은 넌-루거 법안의 초안을 완성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무렵 소련이 붕괴했다. 미국은 16억 달러를 지원해 카자흐스탄 등에 있던 핵탄두를 러시아로 넘겨줬다. 넌-루거 법안 덕분에 옛 소련의 핵탄두는 안전하게 확보됐고, 전 세계는 핵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카터가 논문을 썼을 때 나이는 37세였다.

정당을 초월한 협력을 이끈 넌·루거 의원도 대단했지만, 불혹이 안 돼 세상을 구한 책략을 제시한 카터 역시 뛰어난 전략가임이 틀림없다. 후에 카터는 미국의 제25대 국방부 장관(2015~17)을 지냈다.

미국이 초강대국에 오른 배경엔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뛰어난 기술도 있지만 카터와 같은 전략가의 덕분도 있었다. 전략가는 전투에서 이기는 전술을 논하지 않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거시적 흐름을 조망하면서 개별 정책을 그에 맞도록 조율해나가는 사람들이 전략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독일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다음해 이뤄진 독일 통일은 전략가인 에곤 바르의 동방정책이 바탕이 됐다. [사진 독일연방문서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독일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다음해 이뤄진 독일 통일은 전략가인 에곤 바르의 동방정책이 바탕이 됐다. [사진 독일연방문서청]

조지 케넌은 미국의 대표적 전략가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듯, 미국의 전략가를 케넌의 후예라 일컫는다. 46년 주 소련 미국 대사 대리로 근무하던 케넌은 국무부에 장문의 전문을 보내 소련의 팽창주의를 억제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는 나중에 봉쇄정책으로 이어졌고, 냉전 질서의 뼈대가 됐다.

마이클 필스베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은 미 상원 보좌관으로 있던 80년 ‘전략적 점혈’이란 글을 ‘포린폴리시’에 기고했다. 중국이 미국과 한 판을 붙는다면, 체급 격차가 크기 때문에 비대칭적으로 점혈(點穴·급소)만을 노릴 것이란 분석이었다. 마치 무협지에서 무술의 고수가 상대의 혈을 짚어 마비시키는 방식이었다. 17년이 지난 97년 중국 국방대학은 인민해방군이 점혈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데탕트와 중국 수교로 냉전의 질서를 뒤흔든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 지구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비유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제시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8명의 대통령에게 국방정책을 조언했던 앤드루 마셜 전 국방부 총괄평가국(ODA) 국장 등도 미국의 전략가로 꼽힌다.

전략가는 미국의 독점 상품이 아니다. 독일의 정치인 에곤 바르는 69~72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의 비서로 있으면서 동방정책의 틀을 잡았다. 서독은 동독과 관계를 개선했고 소련·동유럽 국가와도 친목을 도모했다. 바르가 생각한 동방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독일 통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환심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방정책의 성과는 나중에 90년 헬무트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원동력을 제공했다.

한국에선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정책으로 소련과 중국과의 수교를 이룬 김종휘 전 외교안보 수석,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북한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의 얼개를 짠 임동원 전 국정원장도 전략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선 이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만 놓고 봐도 그렇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한국이 주도해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끌어들여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한동안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요즘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북한은 한국과 대화의 창을 닫았다. 미국에선 즉흥적이고 쇼맨십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하면서 대북정책의 기조가 180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토니 블링컨은 “북한을 쥐어짜야 한다”라거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최악의 폭군”이라고 부른 대북 강경파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겉으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미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 당선한 지한파 의원 4명에게 축전을 보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국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의 공동 발의자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지금으로선 알 순 없지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블링컨 지명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포기 전 평화협정 협상이라는 북한의 희망을 묵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한 적 있다. 자신만만해 하던 정부도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부랴부랴 미국으로 보내 바이든 당선인 측 인사들에게 종전선언 등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비슷한 시기 워싱턴 DC를 찾았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조언하거나 실행하는 인사들의 면면에서 전략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한국의 키신저’라고 생각하는 이도 꽤 있다고 한다. 틈만 나면 자신이 큰 그림을 그렸다고 자랑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들을 전략가로 인정할까.

전략가가 없기 때문인지 정부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밟아간다기보다는 현안을 처리하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냉전 질서에 기대는 것이었다”며 “대부분의 정부에선 창의적 발상을 하는 전략가보다는 상황에 대처하는 관리자가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이 전략가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