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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땅 녹자 더 불붙었다···뜨거운 미·중·러 북극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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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의 아일슨 공군 기지를 떠난 B-1B 랜서 장거리 폭격기 1대가 북극을 가로질렀다. 3100해리(약 5741㎞)의 거리를 비행하면서 북극 상공에서 공중급유기로부터 재급유도 받았다.

[이철재의 밀담]

B-1B는 그린란드와 노르웨이해에서 노르웨이 공군 소속 F-16V 바이퍼 2대와 만나 엄호를 받았다. 미 공군은 유럽에서 군사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북극에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필요하며, 이를 기르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야말호가 북극권에서 컨테이너선을 위해 얼음을 깨고 해로를 열어주고 있다 [유튜브 TimeLab 계정 캡처]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야말호가 북극권에서 컨테이너선을 위해 얼음을 깨고 해로를 열어주고 있다 [유튜브 TimeLab 계정 캡처]

지난달 22일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아크티카호가 모항인 무르만스크를 떠나 북극으로 향했다. 아크키타호의 첫 북극권 항해다. 3만3000t급의 이 배는 세계 최대의 쇄빙선이다. 하지만 엔진 3개 중 2개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북극행을 서두른 이유는 러시아가 이 배를 가급적 빨리 운용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따라 원자력 쇄빙선 건조를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을 포함 54척의 쇄빙선을 갖고 있다.

얼어붙은 땅 북극이 뜨거워지고 있다. 물론 지구 온난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극을 노리는 강대국 덕분도 있다. 냉전 때부터 북극에서 열전(熱戰)을 벌인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이번엔 중국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미ㆍ러, 원자력 쉐빙선 투입해 경쟁 

미국 공군 E-3 센트리 조기경보기가 북극권을 초계 비행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권에 자주 개입하자 북극권에 대한 군사 행동을 늘리고 있다. [미 공군]

미국 공군 E-3 센트리 조기경보기가 북극권을 초계 비행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권에 자주 개입하자 북극권에 대한 군사 행동을 늘리고 있다. [미 공군]

북극은 원래 미사일 경로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 지도를 펴 보면, 북미 대륙의 미국과 유라시아 대륙의 러시아 사이는 태평양과 대서양이 갈라놓는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대륙간탄도탄(ICBM)을 쏘는 상황을 가정하자. ICBM은 태평양과 대서양 위를 날아가진 않고, 북극을 거친다. 지구본을 놓고 자로 대보면 미국~러시아 최단 거리는 북극을 지나는 경로다.

그래서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은 북극에 전략잠수함을 항상 배치했다. 전략잠수함은 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싣고 다닌다. 적의 전략잠수함이 북극권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아군 공격잠수함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유사시 적의 전략잠수함을 격침하기 위해서다.

현재 항로와 북극해 항로의 차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재 항로와 북극해 항로의 차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략적으로 중요한 북극권은 최근 더 주목을 받게 됐다. 북극 항로가 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권에서 항해할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미사일의 최단 경로가 북극이듯, 대륙을 오가는 최단 항로도 북극이다. 유라시아와 북미 사이에 놓인 베링해협의 선박 통행량은 지난 10년간 129% 늘었다. 북극권의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이는 나라들이 많다. 전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22%가 북극권에 묻혔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문연구위원은 “사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국가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북극 이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중국과 일본도 북극 활용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또 "미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인식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고, 북유럽 국가와 캐나다는 미국 중심으로 뭉쳐 이익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항로 열려, 고지 쟁탈전 본격화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북극 얼음을 깨고 긴급 부상하는 훈련을 벌이고 있다. [미 해군]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북극 얼음을 깨고 긴급 부상하는 훈련을 벌이고 있다. [미 해군]

북극권에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5년 북극권에 있는 노바야제믈랴 군도와 사하(야쿠티야) 공화국 북부 틱시 지역에 첨단 미사일 방공 시스템인 S-400 포대를 배치했다.

지난해 베링해협엔 K-300P 배스티언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미사일은 지상 목표물도 타격할 수 있다. 북극권과 가까운 미국 알래스카주의 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다.

러시아는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권에서도 비행기를 자유롭게 띄울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모스크바 바우만 공과대학이 러시아 국방부와 협력, 특수 화학약품을 이용해 얼음의 표면 구조를 바꾼 뒤 무거운 비행기가 쉽게 뜨고 내릴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북방함대 합동전력사령부 소속 보병이 개썰매를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북방함대 합동전력사령부 소속 보병이 개썰매를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는 북극권을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러시아는 북극을 담당하는 사령부를 따로 두고 있다.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합동전략사령부다. 해군 예하에 있지만, 육ㆍ해ㆍ공 합동부대다.

이 부대의 지상군 중 핵심인 제200 독립 기계화 보병 여단은 북극 환경에 생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전차와 장갑차를 갖고 있지만, 훈련 때 개썰매와 순록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개썰매와 순록 썰매는 전통적인 북극권 교통수단이다. 물론 스키도 타고 다닌다.

최근 이 부대는 T-80BV의 개량형을 받고 있다. 개량형은 최신 사격통제장치를 갖췄다. 이 전차는 가스터빈 엔진을 달아 추운 곳에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스터빈 엔진은 냉각수가 필요 없다. 냉각수가 있는 엔진은 극한 지방에서 운용하기가 불편하다.

러, 북극 지형 특화된 썰매부대 투입

러시아의 탱크 T-80BV가 극한 지방에서 운용성을 시험하고 있다. [유튜브 Телеканал Звезда 계정 캡처]

러시아의 탱크 T-80BV가 극한 지방에서 운용성을 시험하고 있다. [유튜브 Телеканал Звезда 계정 캡처]

중국은 그동안 북극과 상관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2014년 중국을 ‘북극권 인접 국가(near arctic countr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북극권과 멀리 떨어진 중국이 북극권 접근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게 국제 사회의 평가다.

중국은 2018년 북극권 정책을 담은 백서를 발표한 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일대에 쇄빙선과 민간 연구기지를 끊임없이 늘려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지난해 북극권 회의에서 중국이 이 지역(북극권)에서 점점 더 많이 개입하려고 한다고 경고한 이유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관점에서 북극을 바라보기 때문에 북극권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주로 경제적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건 오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 '과학 탐사' 명분으로 기회 엿봐 

중국의 북극 탐사대원이 쇄빙선인 슈에롱(雪龍)호에서 내려 얼음을 뚫고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중국은 북극과 남극에 과학 탐사를 늘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의 북극 탐사대원이 쇄빙선인 슈에롱(雪龍)호에서 내려 얼음을 뚫고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중국은 북극과 남극에 과학 탐사를 늘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과학 탐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북극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예로 중국과학원이 2014년부터 벌이고 있는 북극 음향 연구다. 중국은 북극권을 포함해 오대양 곳곳에 센서를 두고 음향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음향 정보 수집 센서는 유사시 수상함과 잠수함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의 북극 탐사대는 하이옌(海燕) 수중 드론을 가져가 북극권 바다에서 시험 운항했다. 덴마크군 정보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과학 탐사를 군사적 목적으로 유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5월 ‘중국에 관한 군사ㆍ안보 진전 사항’ 연례 보고서에서 ‘북극해에서 중국의 팽창하는 능력과 이해관계’를 지적하면서 “핵 억지력의 하나로 북극권에 전략잠수함을 배치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해얀경비대 경비함인 캠벨함이 덴마크 해군의 초계함인 크누드 라스무센함과 함께 북극권 피요르드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미 해안경비대]

미국 해얀경비대 경비함인 캠벨함이 덴마크 해군의 초계함인 크누드 라스무센함과 함께 북극권 피요르드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미 해안경비대]

미국은 마음이 급해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때로는 손잡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북극권을 잠식하면서 미국이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폴 주컨프트 미 해안경비대 예비역 제독은 디펜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러시아ㆍ중국과의 북극권 경쟁에서) 수십 년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올해 들어 B-1B 랜서를 비롯 B-2A 스피릿 스텔스 전략폭격기, 시울프급 핵추진 공격잠수함, 이지스 구축함인 포터함(DDG 78) 등을 북극권에 보냈다. 또 영국ㆍ캐나다ㆍ프랑스ㆍ덴마크 등 유럽 국가와 북극권에서 연합 훈련을 벌였다.

미국은 북극권에 적합한 장비를 갖추는 데 열심이다. 미국은 2018년 핵추진 항공모함인 해리 트루먼함(CVN 75)을 북극권에 파견했다. 당시 승조원들이 비행갑판 위에 언 얼음을 야구 배트로 깨뜨려야만 했다고 한다. 미국은 북극권과 가까운 캐나다로부터 북극권 작전에 관련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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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러ㆍ중 이외에도 유럽과 일본이 북극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도 북극권에서 한몫을 챙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문연구위원은 “북극해 항로는 국제 공역으로서 분쟁 지역화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한국은 북극에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적 협의체와 규범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애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은 2013년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을 갖춰 의사결정권은 없지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며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북극 개발에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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