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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비 23조 쏟는 호주···그뒤엔 中 정보·암살 공작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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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한화 디펜스(한화) 창원 공장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한화에서 만든 레드백(Redback) 장갑차 2대가 호주 멜버른 항으로 출발하는 자리다.

[이철재의 밀담]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 호주가 군사비를 늘리는 까닭

호주는 2022년까지 ‘LAND 400’이라는 장갑차 도입 사업을 진행한다. 이미 211대의 차륜형 장갑차를 결정했고, 한화가 도전하는 분야는 400대의 궤도형 장갑차다. 맞상대는 독일 방산기업인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Lynx) KF41이다.

호주는 2022년까지 한국과 독일의 장갑차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LAND 400의 예산은 최대 200억 호주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호주 육군이 해안에서 상륙훈련을 하고 있다. 호주는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비하기 위해 상륙전 능력을 키우고 있다.ㅣ [호주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호주 육군이 해안에서 상륙훈련을 하고 있다. 호주는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비하기 위해 상륙전 능력을 키우고 있다.ㅣ [호주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코알라와 캥거루가 뛰어놀고,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를 가진 나라. 호주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러나 호주는 나름 군사 강국이다.

전 세계 138개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미국의 민간 평가사이트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호주는 19위의 군사력을 가졌다. 이스라엘(18위) 다음가는 순위다. 현역은 6만명에 불과하지만, 군용기 464대와 전투함 48척을 보유했다.

호주 공군(RAAF)은 F/A-18 A/B 호넷과 F/A-18 E 수퍼 호넷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라이트닝Ⅱ을 사들이고 있다. 미국 해군의 전자전 공격기인 EA-18G 그라울러 11대도 갖고 있다. 호주 해군(RAN)엔 경항모로 개조할 수 있는 캔버라급 상륙함 2척과 호바트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이 있다.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이다.

10년간 230조 쏟아부어 군 현대화

호주는 근육을 더 키우려고 한다. 지난달 1일(현지시간) 호주는 『2020년 국방전략 갱신(2020 Defence Strategic Update)』과 『2020 국방구조계획(2020 Force Structure Plan)』을 발표했다. 2016년 내놓은 호주 국방백서의 최신판이다.

호주는 2030년까지 국방비를 늘려 군사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10년간 국방비의 총액은 2700억 호주달러(약 2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23조원 수준이다. 국방 예산을 2020~201년 호주 국내총생산(GDP)의 2%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호주 욱군 장갑차 사업에서 경쟁중인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 [사진 한화디펜스]

호주 욱군 장갑차 사업에서 경쟁중인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 [사진 한화디펜스]

호주는 사이버전, 정보전, 장거리 타격 능력, 첨단 수중 감시 능력을 향상하는 데 중점을 둘 전망이다. 극초음속 장거리 무기, 무인 잠수함 도입 구매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레이저와 같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도 개발한다. 호주는 또 장거리 타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최대 사거리 370㎞ 이상인 AGM-158C 장거리 공대함 순항미사일(LRASM) 200발을 미국으로부터 사들인다.

호주는 지상 타격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도입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의 자주포인 K9와 다연장로켓인 천무를 수출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호주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민간 군사 전문가인 최현호씨는 “호주 해군의 잠수함과 이지스 구축함 사업비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군비 확장에 대한 반대 여론도 높다”고 말했다.

주변에 주적이 없는 호주의 잠재 적국은?

그러나 호주 정부는 군 현대화를 밀어 불일 전망이다. 주변에 별다른 ‘주적(主敵)’이 없는 호주가 왜 그럴까.

호주 국기(왼쪽)과 중국 오성홍기. [EPA=연합]

호주 국기(왼쪽)과 중국 오성홍기. [EPA=연합]

오세아니아 대륙에 자리 잡은 호주는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빼놓고는 호주를 노렸던 국가는 없다. 호주는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잠재 적국으로 삼았다. 인도네시아는 1962년 뉴기니섬 서부 점령과 1999년 동티모르 독립을 놓고 호주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호주ㆍ인도네시아는 2006년 상대방에 대한 주권, 영토 통합성의 존중을 명시하는 롬보크 조약을 맺었다.

『2020년 국방전략 갱신』에 힌트가 숨어있다. 이 백서엔 주적이 없다. 다만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은 더 큰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 호주는 대놓고 얘기는 안했지만, 중국을 잠재 적국으로 바꾼 것이다. 이 정도 표현으로도 노골적으로 중국을 가리킨다는 호주 내부의 평가도 있다.

호주는 물론 중국과 홀로 맞서려는 게 아니다. 동맹국인 미국, 그리고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동반자인 인도와 일본과 협력하면서 중국에 대항하려 한다. 하지만, 만일 중국이 무력 공격을 할 경우는 따끔한 교훈을 줄 군사력을 갖추는 게 호주의 대(對) 중국 억제 전략이다. 그래서 호주는 병력은 적지만,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만큼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

왜 중국을 두려워하는가

중국은 호주의 최대 무역 국가다. 호주는 중국의 6번째 무역 상대다. 호주 수입 공산품의 25%가 ‘메이드인 차이나’다. 호주 수출의 13%가 중국으로 보내지는 석탄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호주군. 호주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사진 미국 육군]

이라크에 파병된 호주군. 호주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사진 미국 육군]

경제 관계는 긴밀하지만, 호주는 정치ㆍ외교ㆍ군사적으론 중국이 껄끄럽다. 특히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면서 이곳의 섬을 군사기지로 삼은 게 호주의 신경을 거스르게 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호주는 중국이 남중국해의 군사기지를 발판으로 무력을 행사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2020년 국방전략 갱신』과 『2020 국방구조계획』을 공개하면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우리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재편성 과정에 있다”고 말한 이유다.

호주는 홍콩 보안법 제정 과정에서 중국이 홍콩 시위대를 과격하게 진압하는 데 대해 반대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은 경제적 압박을 주기 위해 호주의 수출품 목록을 만들어 관세 부과와 비관세 장벽을 검토하기도 했다.

지난 6월 호주 전략정책연구소가 중국이 해외 중국인 지역 사회와 외국의 지식인층에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자 중국이 반발했다. 호주 해군 군함은 지난달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샤(南沙) 군도) 근처 바다에서 중국 군함과 다섯 차례 대치했다는 보도도 있다.

호주를 들끓게 한 중국의 3C 공작

호주 여론과 언론에서 반중국 정서를 자극한 사건들이 최근 잇따랐다. 중국이 호주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정계와 학계에 대한 공작을 벌이다 들통이 난 것이다.

호주 언론과 인터뷰한 중국 스파이 왕리창. [The Age 홈페이지 캡처]

호주 언론과 인터뷰한 중국 스파이 왕리창. [The Age 홈페이지 캡처]

중국은 중ㆍ호 관계 연구소(ACRI)와 중국 평화통일 촉진 호주 위원회(ACPPRC)란 조직을 통해 각각 학계와 정계 후원을 했다. 이들 조직은 주호주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개발로 큰돈을 번 중국계 호주인 차우착윙(周澤榮)과 황샹모(黃向墨)가 배후에 있다.

2016년 호주국립대학(ANU)이 차우와 황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에 대해 호주안보정보국(ASIO)이 조사에 착수했다. 2017년 7월 친중국 성향의 노동당 샘 데스티에리 상원의원이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중국계 기업으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고 정보를 건네준 혐의로 사임했다. 데스티에리 의원은 평소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인물이다.

2018년 5월 호주의 고위 외교관인 존 애쉬가 차우로부터 고급 선물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스파이인 왕리창(王立强)이 호주에 망명을 신청하면서 “중국 정보당국 지시로 호주에서 스파이로 활동했으며, 지시받은 명령에는 암살까지 포함됐다”고 폭로했다.

이런 중국의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은 역효과를 불렀다. 맬컴 턴불 전 호주 총리는 중국을 콕 집어 호주를 상대로 '비밀(covert)', '강압(coercive)', '부패(corrupting)' 공작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4인방 호주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에서 호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이다. 그래서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 등 5개국의 정보협력체제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하나가 호주다.

호주 내륙의 파인 갭(Pine Gap)이란 곳에 미국ㆍ호주가 공동으로 세운 대규모 감청시설이 있다. 중국이 노리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이 시설이 담당한다. 호주 북부 다윈의 호주 공군 기지에 2012년부터 미 해병의 공지기동대(MAGTF) 2500명이 순환 배치되고 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필리핀해에서 벌어진 미국-호주-일본의 연합 해상 훈련. [사진 미 해군]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필리핀해에서 벌어진 미국-호주-일본의 연합 해상 훈련. [사진 미 해군]

호주는 중국의 위협을 내세워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지난달 필리핀해에서 미국ㆍ일본과 해상 훈련을 벌였다. 올 연말 인도가 주도하는 미국ㆍ인도ㆍ일본 등 다국적 해상 훈련인 말리바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호주는 2017년 이 훈련에 옵저버로 참관했다. 인도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정식 초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 중국과의 국경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서 인도의 입장이 바뀌었다. 말리바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4인방이 모두 모여 중국과 싸우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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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 같은 호주를 상대로 유학에서부터 무역까지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는 꿈쩍도 안 하고 있다. 호주와 중국의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호주의 대(對)중국 제철용 석탄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늘어난 2400만t이었다. 이처럼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이 안 사면 팔 곳이 많다는 게 호주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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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적 교수는 “호주는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편을 들어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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