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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엔 “나라 왜 이래” 朴땐 “나와라 최순실” 대통령연설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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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갖기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갖기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의 28일 국회 시정연설이 여당의 환대와 야당의 항의 속에 끝났다. 연설에 앞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환담을 위해 국회의장실에 들어가려다가 청와대 경호처 직원으로부터 ‘몸수색’을 당해 야당 의원들이 거칠게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회에 도착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청 입구에서 “나라가 왜 이래” “이게 나라냐”라는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문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섰을 때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립하지 않았다.

앞서 국민의힘 의총에선 시정연설에 참석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부 중진 의원들이 ‘항의의 표시로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장외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다만 “항의는 하더라도 테이블을 박차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할 말은 하되 ‘막무가내 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 위해 본회의장엔 앉았다”고 말했다.

박근혜엔 “최순실 누구?” 이명박 땐 집단 퇴장

2019년 10월 22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방안과 관련한 내용을 발언하자 엑스(X)를 그리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변선구 기자

2019년 10월 22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방안과 관련한 내용을 발언하자 엑스(X)를 그리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변선구 기자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국회에 협조를 구하는 시정연설은, 야당의 투쟁 무대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22일 문 대통령 시정연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조국 사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고 발언하자 야당 의석에선 “조국! 조국!”이란 야유가 나왔다. 특히 공수처 통과를 당부하는 대목에선 야당 의원들이 단체로 손을 교차해 ‘엑스(X)자’를 그리거나, 귀를 막는 것으로 항의했다. ‘방송장악 음모 밝혀라’는 대형 현수막도 펼쳤다.

2016년 10월 2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자 야당, 무소속 의원들이 '나와라 최순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10월 2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자 야당, 무소속 의원들이 '나와라 최순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도중 이재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그런데 비선실세들은?'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도중 이재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그런데 비선실세들은?'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정농단 의혹이 꿈틀대던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 연설 때는 더 노골적인 비난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 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맞이했다.

일부 의원들은 ‘나와라 최순실’ ‘비선실세들은?’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외면하고 단상으로 걸어가 연설을 시작했지만, 정의당 의원들은 ‘(백남기 농민) 부검 대신 특검’이라고 적힌 미니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시정 연설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정교과서 반대'라고 적힌 인쇄물을 모니터에 붙이고 당시 문재인 대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고 있다. 문희상, 박병석, 이종걸, 최재성, 유은혜, 이언주, 박수현, 김현미 당시 의원이 눈에 띈다. 중앙포토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시정 연설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정교과서 반대'라고 적힌 인쇄물을 모니터에 붙이고 당시 문재인 대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고 있다. 문희상, 박병석, 이종걸, 최재성, 유은혜, 이언주, 박수현, 김현미 당시 의원이 눈에 띈다. 중앙포토

2013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정당해산 청구 철회를 주장하는 피켓을 든 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3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정당해산 청구 철회를 주장하는 피켓을 든 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진 2015년 10월 27일 열린 박 대통령 연설 때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 인쇄물을 본회의장 모니터에 붙이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때 사진에는 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 주변에 문희상ㆍ박병석 의원, 김현미ㆍ유은혜ㆍ이언주 의원, 최재성ㆍ박수현 의원 등이 모인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문 대표는 박 대통령 연설 직후 “우리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 도대체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왜 어려운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고 혹평했다.

정부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뒤에 열린 2013년 10월 박 대통령 시정연설 때는 삭발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마스크를 쓴 채 ‘정당해산 철회’ 현수막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2008년 10월 27일 시정연설에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줄곧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노동 문제 등을 놓고 정부에 날을 세우던 민노당 의원들은 연설 시작 10분 만에 ‘큰 위기가 오고 있다’ ‘서민 살리기가 우선’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인 뒤 집단 퇴장했다.

2008년 10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앞서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 중앙포토

2008년 10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앞서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0월 13일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기립하지 않고 노 대통령을 맞았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0월 13일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기립하지 않고 노 대통령을 맞았다. 중앙포토

2003년 10월 13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선 ‘대통령 무시’ 논란이 일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비리 사건이 터져 여론이 싸늘할 때였다. 당시 노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오자 우군인 통합신당 의원들만 기립해 손뼉을 쳤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부분 일어서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럽던 민주당 의원들 다수도 자리에 앉아 대통령을 외면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직을 걸겠다”며 국회에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지만, 연설 내내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연설이 끝난 뒤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추미애 의원은 “노 대통령이 아직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고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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