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한 합숙 고교생···"코로나 걸려도 내책임" 각서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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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대구·경북 및 강원 국립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대구·경북 및 강원 국립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경북 경주시 한 고등학교 기능반 학생 A군이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초·중·고교의 등교가 금지된 기간 중 벌어진 일이었다. A군은 기능경기대회 준비로 기숙사에서 하루 11시간 이상 고강도 훈련을 받고 있었다.

등교금지 기간에도 합숙훈련받다 극단적 선택 #‘코로나 걸려도 학교 책임 없다’ 동의서 쓰고 #하루 11시간 고강도 훈련받아…국감서 질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용인정)이 경북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던 경북 지역 직업계고 20개 학교 중 8개 학교 기능반 학생들은 등교 금지 기간에도 학교에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1일 경북교육청이 뒤늦게 직업계고 기능반 훈련 중단을 권고했지만, A군이 다니는 학교를 비롯한 3개 학교는 합숙훈련을 지속했다. 특히 A군의 학교는 기능반 학생에게서 ‘코로나19 감염이 되더라도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이 책임지고 학교에 대해 일절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까지 받았다. A군은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않고 직접 서명을 한 뒤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A군이 사망한 이후 5개월 뒤인 지난 9월 21일 경북교육청은 전국 기능경기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경북교육청은 “교육부와 국가 수준의 코로나19 수칙을 준수하고, 기능훈련 학생의 인권과 복지지원에 역점을 두고 전공심화 동아리 등 자율적 훈련을 실시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의원은 19일 대구시 북구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경북교육청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의원은 임종식 경북교육감에게 “전국기능대회 1등 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코로나19 수칙 준수하고 학생 인권에 역점을 두고 자율적 훈련을 했다는 말이 맞느냐”고 따졌다.

 사망 당시 A군이 등교 금지 기간중이었는데도 어떻게 학교 기숙사에 있을 수 있었느냐는 이 의원 질문에 임 교육감은 “아직 훈련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4월 1일자로 기능경기대회 훈련을 전면 중단하기로 지침내리고 확인했다”고 답했다.

19일 대구시 북구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식 경북도교육감에서 수검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경북교육청

19일 대구시 북구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식 경북도교육감에서 수검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경북교육청

 하지만 A군은 동의서를 낸 뒤 훈련을 이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의원은 A군이 제출한 동의서를 공개하면서 “동의서에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 책임’이라는 내용이 있다”며 “사실상 생명 포기 각서”라고 비판했다.

 또 “4개월간 하루 11시간씩 훈련을 했는데 요즘 노역장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기능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학교에 점수를 주고 포상금도 준다. A군을 지도한 교사도 600만원 포상금을 받았다.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감장에는 A군의 아버지도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A군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교육부와 도교육청에 수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못받고 6개월이 지났다. 아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했는지, 학교에선 무슨 도움을 줬는지, 학교에서 관리·감독을 잘 했는지 물어봤는데 오히려 저한테 그간의 아이 잘못을 들춰서 모두 저희 잘못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만 믿고 1년 중 300일 이상을 보냈다. 혹독한 훈련을 받고 2주에 한 번씩 집에 오던 아이는 하루종일 잠만 자다 학교로 돌아가곤 했다”며 “학교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줬더라면, 학부모인 저에게 말이라도 해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A군의 아버지는 “(등교 중지 기간 중 등교를 할 수 있게 동의하는) 동의서를 저는 보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필로 서명했다는 동의서가 어떻게 학부모 동의서가 될 수 있느냐. 등교 금지가 잘 지켜졌더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조사에 소극적이니 누구에게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소연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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