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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치료 특수병동의 현진영, 마약과의 평생 전쟁

중앙일보

입력

"춤추고 싶었다. 미친 듯이 노래하고 싶었다.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도 오직 하나뿐인 내 삶의 표현 방식이기에, 너무도 소중한 단 하나의 기쁨이기에, 지쳐 쓰러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그 순간까지 나는 춤을 추고 싶었다." (현진영의 일기 중에서) 마약투여로 네번이나 구속된 가수 현지영.

지난 1월 18일 현진영은 마약 공개 치료를 하겠다며 스스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말과 함께. 그로부터 50여일. 그의 도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가족 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특수병동 속으로 들어가 봤다.

"철컥." 지난 5일 오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 병원 별관 9층. 굳게 닫혔던 폐쇄 병동의 문이 열리자 4인 병실 한구석에 기대 앉은 현진영(본명 허현석.31)이 보인다. 무대 위를 날아 다니던 날렵한 모습은 간 데 없다. 환자복을 입은, 수척해 보이는 남자가 있을 뿐이다.

기자가 다가서자 너무나 반갑게 손을 잡는다.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기자의 눈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입원 초기 외부인의 출입을 일부 허용했던 병원측은 현재 치료를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중이다.

병실에선 전화가 금지돼 있어 통화도 불가능하다(기자도 휴대폰을 병원측에 맡겨야 했다). 외로움을 이겨 내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 피말리는 자신과의 싸움

그는 주먹이 두 개는 쉽게 들락날락할 만큼 헐렁해진 환자복을 내 보였다. 자신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택한 방법이 '다이어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마약을 끊은 후 기형적인 비만에 시달렸던 그에게 살을 빼는 건 마약이란 겉옷을 벗어 던진다는 의미였으리라. 현재 그의 몸무게는 84㎏. 입원 50일 만에 17㎏를 줄였다.

"심리적인 변화는 보여 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살을 빼기로 결심했죠. 매일 필요량의 절반도 안되는 1천 칼로리만 섭취하고 있어요. 반면 운동은 하루에 다섯 시간씩 하고요.

너무 무리하게 살을 빼는 바람에 의사에게서 세 번이나 심근경색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어요."

그는 요즘 운동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해 받고 있다. 모든 스케줄은 철저히 짜인 시간표에 따라 진행된다. 처음엔 외로움과 두려움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몇번이나 울었지만, 지금은 농담도 던질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입원 초기 심각하던 우울증도 치료를 통해 많이 좋아졌다. 이젠 4월 초로 예정된 퇴원이 몹시 기다려진다고 했다.

또한 그는 얼마 전부터 지나온 과거를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일종의 회고록이다. 밤 10시 취침 신호가 울리면 현진영은 거꾸로 스탠드 불빛에 몸을 맡긴다. 어떻게 마약을 시작했고, 어떤 파멸의 길을 걸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단상을 적은 글이 벌써 노트 70여쪽을 넘었다.

*** 절망 속에 꽃핀 사랑

2000년 여름 현진영은 서울 강남의 모 헬스클럽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모델 겸 탤런트 오서운(24)이었다. 같이 운동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에게 서서히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외국 유학을 준비하던 오서운은 현진영의 미래를 위해 국내에 남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현진영의 4집 타이틀 곡 '요람'의 뮤직 비디오 출연을 자청하기도 했다. 마약 치료를 주장한 것도 그녀였다. 망설이는 현진영에게 "모두 앞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자"며 등을 떠밀었다.

이날 인터뷰에도 함께 한 그녀는 "마약에 대해 확실한 선을 긋고 싶어 병원에 가자고 졸랐어요. 오빠가 가는 길에 확실한 버팀목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현진영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팬들은 물론, 이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요. 서운이를 생각해서라도 마약이란 악마를 꼭 제 몸에서 몰아 낼 겁니다."

두 사람의 순애보는 최근 네티즌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인터넷 상에서 화제다. 그의 홈페이지(http://www.hyunjinyoung.net)에는 "사랑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는 격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 그가 본 마약 현실

그는 마약에 관한 한 한국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말한다. 최근 연예인 마약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되는 것일 뿐, 더 큰 문제는 마약의 마수가 학생.가정주부 등 일반인 속으로 파고 드는 점이라고 했다.

현진영은 우리나라 교정 행정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우리나라 교도소는 마약 사범 제조창입니다. 초범자를 선수로 키우고 있습니다."

1991년 대마초 흡입 혐의로 구속된 현진영은 감방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곳은 작은 마약 조직을 옮겨 놓은 듯했다. 마약 사범들은 자신의 경험들을 공유하며 연락처가 적힌 메모를 돌렸다.

히로뽕이라는 걸 알지도 못했던 그가 출소 후에는 어느덧 히로뽕 투약자로 변해 있었다. 91년 교도소에서 만난 한 초범자는 몇 년 후 다시 만났을 때 거물급 판매책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수사망을 피할 수 있나 서로 매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합니다. 마약사범 치료 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구속만 시키다 보니 구치소.교도소가 마약사범들의 소굴이 돼 버리는 겁니다."

*** 마약과의 평생 전쟁

그는 마약에 관한 한 자신이 걸어온 길이 교과서라고 했다. 마약이란 처음 접근하긴 어렵지만 일단 맛본 후엔 빠져들기 쉽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종말뿐이라고 했다.

"마약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도 1백%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마약은 영원히 죽지 않는 혼령처럼 사람을 괴롭힙니다. 처음엔 쾌락을 주지만 결국 그 끝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사가 귀찮고,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게 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마약의 유혹은 이길 수 있지만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 4년간 그 유혹을 이겨냈지만 앞으로도 평생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온 편지 한 통을 보여 줬다. 거기엔 "나는 아직 마약을 끊지 못했습니다. 현진영씨의 노력이 성공하길 빕니다. 저에게 희망이 되기 때문이죠"라고 적혀 있다.

그는 병원에서 나가면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겠다고 했다. 다시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말한 대로 백색의 유혹은 그가 절망에 빠질 때 다시 손을 내밀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가 지금 현진영이 말하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킬 때일 것이다.

글=이상복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가수 현진영은…

현진영은 1990년 '현진영와 와와'란 그룹의 리더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백 댄서로 활동하던 연예인이 강원래.구준엽, 즉 지금의 '클론'이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덮어 쓴 특이한 복장을 선보인 현진영은 당시 대중들에겐 생소했던 힙합 음악을 유행시키며 가요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현진영 고 진영 고''흐린 기억 속의 그대''슬픈 마네킹' 등의 히트곡들이 TV 가요 프로를 석권했다. 이런 그를 서태지보다 앞선 랩의 선구자로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에게 이후의 세월은 추락의 연속이었다. 91.93.95.98년,이렇게 네번이나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고, 팬들도 자연히 그에게서 멀어졌다. 처음 호기심에 마약을 접했던 그는 점차 상습 마약 중독자로 전락해 갔다.

특이한 점은 그가 풀려난 후엔 대부분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매번 재기의 몸부림을 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백색의 유혹에 굴복해야 했다.

*** 담당의사의 말

유명 인사를 치료하는 일은 의사에게 골칫거리일지 모른다. 치료의 진척 과정을 묻는 전화는 왜 그리 많은지. 하지만 현진영의 담당 의사인 순천향대 신경정신과 한상우(40)교수는 기자의 업무 방해에 끝까지 '친절'로 화답했다.

현진영과의 인터뷰를 허락한 것도 조금의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한다.

현재 한교수는 현진영에게 인지.행동 치료와 정신분석학적 치료를 동시에 하고 있다. 대부분의 마약 사범들에게는 스스로를 합리화한 이유가 있다. 그 틀을 우선 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방향으로 욕구를 돌릴 수 있도록 행동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것.

"현진영의 경우 마약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입원 초기엔 본인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지금은 상담을 통해 많이 극복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진영이 마약의 굴레를 끊기 위해선 적어도 3년 정도는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제 모든 건 현진영씨의 몫으로 남은 겁니다. 그가 병원에서의 결심을 영원히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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