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쇼핑백 접어 한달 10만원 번다" 31명 사형 확정자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pixabay]

[pixabay]

 우리와 함께 살아오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연구위원이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이라는 연구물에서 묘사한 사형 확정자들의 현주소다. 이 연구를 맡은 박형민·김대근 연구위원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60명의 사형 확정자 중 31명을 인터뷰해 기록으로 남겼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6년째 사형 확정수로 지내는 사람, 나이도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사형 확정자의 하루는

다수의 사형 확정자들은 정해진 기상 시간보다 빨리 일과를 시작한다. 다음은 한 사형 확정자와 연구진의 대화 중 일부다.

연구자= 몇시에 일어나세요?
사형 확정자= 보통 저희 형제들은, 저 같은 경우는 5시에서 5시 반? 저희는 최고수들을 형제라고 하거든요. 형제들은 좀 여기 오래 살다보면 귀가 조금 많이 예민해져요. 그래서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아, 이건 직원이구나. 배식차구나’이렇게 할 정도로 작은 소리에도 깨요.

교정시설 내 ‘최고수’로 통하는 사형확정자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사형 확정자 역시 "다섯 시 정도 되면 일어난다"며 자신의 일과를 줄줄 왼다. 배식 준비와 씻기, 라디오 들으며 아침 식사를 한 뒤 설거지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아침 일과다. 새벽기도를 하거나 2시간 정도 법화경을 한자 공부 겸 따라 쓴다는 사형수도 있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일과를 바쁘게 보내는 이유를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무료한 시간이 주어지는 건 괴롭다는 취지다.

63세가 된 한 사형 확정자는 교정시설에서의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가 36에 들어왔어요. 여기를. 36에 들어왔는데 까끌로(거꾸로) 지금 36이 63이 됐는데…. 36살 때까지는 직장인으로 월급쟁이로 잘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이렇게 이런 신분이 되고 그러니까 마음이 아주 아프죠.”

쇼핑백 접기로 돈 벌어 

[pixabay]

[pixabay]

 교정시설 내에서 사형 확정자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의 종류는 제한적이다. 겉으로는 기결수(형이 확정돼 형의 집행을 받는 수용자)처럼 보이지만 사형은 형을 집행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위는 미결수의 신분이다. 미결수지만 주변의 다른 기결수들보다 오래 교정시설에 남을 처지인 셈이다. 이들은 과거에는 이른바 '출역(수용자들이 외부 공장 등 작업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2008년 법이 바뀌면서 사형 확정자들도 출역이 가능해졌다. 종이 쇼핑백 접는 일을 하러 출역을 간다는 한 사형 확정자는 "쇼핑백 한 개에 30원가량 받아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연구자=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요?
사형 확정자= 저 이번에 붓글씨 배웠거든요? 너무 좋아요. 진작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허락이 안 됐다 올해 해줘서 1년 동안 배웠는데 너무 좋아요. 사형수, 집행할 때 까지 가둬 놓는 것만 문제가 아니고 사형수도 교육을 받을수 있고 활동을 할 수 있어야해요. 격리하고 배제시키면 안 바뀔 거거든요.

사형 확정자들이 바라는 '다양한 활동'은 주로 교정시설 내 취미활동이었다. 이들은 유기수·무기수와 달리 직업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인문학 강좌나 예술 강좌 등에 참여할 수가 없다.

교정시설 내 사형 확정자들은 바둑이나 서예, 컴퓨터 같은 약간의 취미생활을 배워보고 싶다고 희망 사항을 말한다. 또 "사형수라는 이 명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토로한다. 한 확정자는 "우리야말로 인성 교육이 필요한데, 그런 게 한 번도 없어서 받아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형제도는 유지, 집행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지난해 2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지난해 2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속한다. 가장 최근 사형이 확정된 사례는 2016년 사형 선고를 확정받은 GOP 총기 난사 임모 병장 사례다. 하급심에서 드물게 사형 선고가 나오기도 한다.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인 안모씨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사형 확정자들은 이렇게 사형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집행은 하지 않는 불확실성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연구자=사형이 여전히 집행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사형 확정자=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사는 게 아닌데, 또 반복해야하는가. 빨리 결정해줬으면. 아니면 내 스스로 결정 해야 하는가. 하루 하루가 생각과 고민만 늘어나게되고요. 이제 몸도 불편하지만 내일은 더 불편해질 수 있어요. 그런 생각하면 그냥 빨리 해결해줬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일부 사형 확정자는 자신의 삶을 '죽은 삶'으로 규정했다.

연구자=죽음을 준비하는 삶이잖아요. 사실은 매일이.
사형 확정자= 아니요,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죽은 삶이죠. 진작 죽었죠 전. 다만 세상에서 죄를 짓고 들어와 내가 갇힌자로 오랫동안 살았지만 다시 이 안에서는 죄를 짓고 싶지 않다….

 사건에 대한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피해자나 사건에 대해 생각할 때 '가해자의 트라우마' 형태로 죄책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자=그 때 기억들이,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들이 있나요?
사형 확정자=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 마지막 얼굴. 그 다음에 제 손에 들려있는 칼. 흉기 이런게 떠오르고요. 숨이 탁 막힙니다. 얼굴이 싸늘하며 경직되는 느낌이 들다 금방 또 돌아오는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형수들은 사형제도에 찬성할까 

 사형제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가 지난해 11월 '세계사형반대의날'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에 사형제도 폐지의 염원을 담은 조명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사형제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가 지난해 11월 '세계사형반대의날'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에 사형제도 폐지의 염원을 담은 조명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모순적이게도 다수의 사형 확정자들이 연구자와의 대담에서 "사형 제도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형 제도가 주는 범죄 예방 측면을 강조하는 확정자들의 의견이었다. 반면 한 확정자는 "저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말로 사형 제도 폐지를 희망했다. 그는 "내 한 몸 죽는 것은 죽을 수 있지만, 내가 죽음으로써 내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형벌, 예를 들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제도에 대해서 사형 확정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 확정자는 "들어왔을 당시에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사형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니 그 말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여기를 평생 못 나가고 이걸로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이 발이 땅에 닿아야 하는데 오히려 붕 뜨는, 그런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