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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감염 28%, 방심했다간 대유행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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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혜진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시혜진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환자 산소 포화도가 기계 호흡으로도 유지되지 않습니다.”

3단계 거리두기도 부족한 상황 #방역과 거리두기에 최선 다해야

“체외막 산소 공급 준비해 주십시오.”

“기계 호흡 시작했으나 혈압과 호흡이 유지되지 않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조금 전 사망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집에만 계셨고 건강하셨는데…믿어지지 않네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지만 최근 수도권 병원의 격리 병상에서는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이다. 20일 기준 코로나19 국내 누적 확진자는 2만2975명, 사망자는 383명이며, 위중·중증 환자는 146명이다. 수도권 중심으로 확진자가 400명까지 나오자 8월 31일 사회적 거리두기(이하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됐다. 2주간의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에도 신규 확진자가 100명을 넘는 상황이 지속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지난 14일 거리두기 2단계로 완화됐다.

언뜻 보면 신규 환자도 줄고 정책이 완화됐으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첫째, 깜깜이 환자가 늘고 있다.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주간 방역 당국에 신고된 신규 확진자 중 깜깜이 환자가 530명(28.1%)에 달한다. 이는 올해 4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환자가 전체 4명 중 1명 이상인 셈이다. 깜깜이 환자 증가는 파악되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뜻이다. 추가적인 대유행이 언제든 발발할 수 있는 불씨라 볼 수 있다.

둘째, 고령 환자가 늘고 있고 위중·중증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누적 확진자 중 60대 이상이 27.6%인데 수도권 유행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위중·중증 환자 중 60대 이상은 87%에 달한다. 사망률 역시 고령일수록 높다. 국내 사망률은 50대 이하 0.5% 미만, 60대 이상 1.19%, 70대 이상 6.47%, 80대 이상 20.57%로 고령일수록 급격히 올라간다. 고령 환자의 경우 처음엔 증상이 없더라도 급격한 진행이 많다.

고령 환자의 증가로 인한 위중·중증 환자 증가는 개인에게는 합병증이나 사망을 초래한다. 앞에 사례로 든 환자는 본인은 나간 적이 없으나 8·15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가족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사회적으로는 의료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수준의 중증 환자만으로도 수도권 전체의 코로나 진료 시스템에 위기가 오고 있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돌려막기로 버티는 수준이다. 중증 환자 치료가 가능한 의료진은 매우 한정적이다. 중증 환자가 100명만 더 늘어나면 코로나에 대응하는 나라 전체의 시스템과 일반 중증 환자의 진료까지 흔들릴 것이다.

셋째이자 최대 위험 요인은 느슨해진 사람들의 태도이다. 2단계로 완화된 거리두기에 “이제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때마침 추석 명절과 연휴가 다가온다. 명절에 가족과 친지와의 모임을 계획하거나, 고향 방문 또는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일부 단체에서는 10월 3일 광화문 집회를 강행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거리두기 강화에도 100명 이상이던 확진자가, 거리두기가 느슨해지면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할 수 있다.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많이 지치며 “이게 끝이 있는 걸까” 하는 심정과 “나는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절대 괜찮지 않다. 지금은 3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백신이나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해 방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추석 기간 방심하면 전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환자가 증가한다. 그 환자가 내 부모일 수 있다. 거리두기와 생활수칙 준수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가장 간단하지만 중요한 일이다.

시혜진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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