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홍남기 "재정준칙 경기둔화 때 한도 완화, 위기 땐 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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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7일 9월 중 발표할 예정인 재정준칙과 관련해 “경기둔화 시 (국가채무비율·관리재정수지 등) 한도를 완화하고, 위기 시엔 면제토록 할 것”이라며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한편, 한도를 주기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여당서 확장재정 흔들까 우려하자 #“유예기간 두고 위기 땐 준칙 면제” #예외 많아지면 준칙 유명무실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이날 온택트(온라인+언택트) 방식으로 진행된 민주당의 ‘2020년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강연에서 “재정준칙 도입 시 필요한 재정의 역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설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부총리가 재정준칙 도입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부총리는 그간 ‘유연한 재정준칙 설계’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써 왔다.

재정준칙이란 국가채무나 재정적자가 일정한 수준에서 관리되도록 법제화하는 것으로, 일종의 재정 운용 가이드라인이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의원 발(發)로 총 4건의 재정준칙 도입 법안이 발의돼 있다. 매 회계연도 결산 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로, 관리재정수지의 적자를 GDP의 2~3% 이하로 유지토록 하는 게 골자다. 20대 국회 2016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기국회 대비 온택트 의원 워크숍’에서 화상으로 연결된 의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기국회 대비 온택트 의원 워크숍’에서 화상으로 연결된 의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재정준칙 도입이 재정 운용을 경직시켜 확장재정 기조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가운데, 재정준칙 도입과 함께 다수의 예외조항을 두면서 사실상 국가채무가 폭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력적인 운영도 방법이긴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재정건전성 문제가 생기는 만큼 재정 여력을 남겨놓는 방향의 재정준칙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재정준칙 기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으면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다수설이다. 그러나 앞서 기획재정부는 GDP 대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를 내년 -5.4%→2022·2023년 -5.9%→2024년 -5.6% 등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내년 47.1%→2022년 51.2%→2023년 55.0%→2024년 58.6% 등으로 예측했다. 이미 60%에 육박하는 국가채무비율을 예고한 만큼 재정준칙 도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이 다소 악화한 건 사실이지만, 선진국 대비 양호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 겸 제1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 겸 제1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홍 부총리는 이어 재정준칙이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에는 “오히려 준칙 도입이 글로벌 트렌드”라며 “전 세계 92개국이 준칙을 운용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 중 한국과 터키만 아직 도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준칙을 어기는 건 “준칙 폐기가 아니라 예외사유로 면제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예외 장치를 다수 마련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재정준칙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홍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과 관련해 강남 4구의 집값이 5주 연속 보합세라는 점을 들며 “가격 상승세가 멈추고 투기 거래가 감소하는 등 정책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유리한 통계만 취사선택한다는 비판에 대해 홍 부총리는 “가격지수, 실거래통계, 매매심리지수, 거래량 빅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지표를 활용한다”고 설명했지만, 사후 배포한 자료에는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선 한국감정원 통계만 인용돼 있었다고 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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