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김종인에 공개 반박 "시장경제 지지 정당답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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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동의 의사를 밝힌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향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공개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국당 비대위원장이었다.

김병준 전 위원장이 문제 삼은 것은 김종인 위원장의 지난 14일 언론 인터뷰다. 김 위원장은 당시 “상법과 공정거래법이 전반적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정한) 제도를 확립하는 건 코로나와는 별개”라고 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각종 규제법안에 견제 역할을 해야 할 보수정당의 대표가 찬성 의사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국민의힘 일각에서 “당 노선을 바꾸겠다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왔다.

재계도 김 위원장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난달 25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子) 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母) 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분리선출제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특히 대주주가 3% 이상의 지분을 가졌어도 의결권은 3%로 제한, 대주주 영향력을 줄인 게 핵심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을 두고는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 간섭 수단이 될 수 있다며 1일 국회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김 위원장은 17일에도 찬성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비대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정강·정책을 개정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최초로 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다소 내용상의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법 자체에 대해 거부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전날(16일) “김 위원장의 법 개정 의지를 환영한다. 정기국회서 처리하자”고 밝힌 데 대한 입장을 묻자 내놓은 답이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반박은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찬성의견 표명 이후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함부로 찬성하면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국가권력이 강한 가운데, 또 그 자의적 행사 가능성 큰 가운데 이뤄진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른 기업 규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추가 규제를 얹으면 국가권력만 강해진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특히 주목한 건 배임죄이다. “배임죄의 경우 손실을 끼친 경우만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넓게 적용되고 있다. 유무죄 예측가능성도 매우 낮아 국가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업이나 기업주도 잡아넣을 수 있다. 이렇게 국가의 자의적 권력이 강한 가운데 다중대표 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나”는 게 김 전 위원장 주장이다. 그는 “고소·고발 가능성은 더 커지고, 기업은 국가권력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종국에는 시장 자율성과 자정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당답게 시장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달라. 배임죄 등 국가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에 대한 전면 개혁 등을 조건으로 걸기라도 하라”고 촉구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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