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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야수 둘, 존재를 ‘승인’ 받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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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기회’에 굶주렸던 한국 축구의 두 ‘젊은 피’는 피 냄새를 맡은 야수 같았다. 기회가 주어지자 악물고 놓지 않았다. 벨기에 주필러리그의 이승우(22·신트트라위던)와 스페인 라리가의 이강인(19·발렌시아)이 나란히 공격 포인트 2개씩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승우·이강인 공격포인트 합창 #승우, 앤트워프전 전반에만 2골 #강인, 도움 2개로 4-2 승리 견인 #새 감독 신뢰 속 새 시즌 맹활약

나란히 공격 포인트 2개씩 기록한 이승우와 이강인(아래 사진). 지난 시즌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새 감독 부임 후 신뢰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란히 공격 포인트 2개씩 기록한 이승우와 이강인(아래 사진). 지난 시즌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새 감독 부임 후 신뢰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승우는 14일 홈에서 열린 리그 5라운드 앤트워프전에서 전반에만 두 골을 몰아쳤다. 전반 1분에는 왼발로, 전반 23분에는 오른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1, 2호 골. 팀이 후반 막판에 결승골을 내줘 2-3으로 졌지만, 이승우는 경기 MVP에 뽑혔다. 한 현지 매체는 “두말할 나위 없는 오늘의 선수”라며 평점 8을 줬다.

이승우가 공식경기에서 골을 넣은 건 헬라스 베로나(이탈리아) 시절이던 2018년 5월 AC밀란(이탈리아)전 이후 2년 4개월 만이다. 지난해 8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으려고 벨기에로 옮겼지만,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첫 시즌에는 4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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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등 번호(10번)와 팀 여건보다 고액의 이적료(120만 유로·17억원) 및 연봉(80만 유로·11억원)의 주인공이 벤치에만 머무는 상황이 계속됐다. 안팎에서 억측과 조롱이 난무해도 이승우는 입을 닫았다. 케빈 무스카트(호주) 신임 감독이 부임한 뒤에야 구단 고위층과 전 코칭스태프 간 갈등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승우는 지난 시즌 종료 직후 곧장 한국으로 들어와 개인 운동에 전념했다. 대표팀 선배 조원희(수원FC)의 트레이닝 센터를 찾아 근력과 지구력을 보강했다. 팀으로 돌아간 그는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꿰찼다. 과감한 슈팅과 날카로운 패스는 물론이고, 거친 몸싸움에도 적극적이다.

이승우는 출국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힘들게 뒷바라지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어머니(최순영 씨)는 까다로운 벨기에의 비자 발급 체계 때문에 3개월마다 한국과 벨기에를 오간다. 지난달에도 아들에게 ‘집밥’을 먹이기 위해 한국산 식재료를 잔뜩 준비해 출국했다. 이승우의 최측근 인사는 “지난 시즌 여러 팀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다. 그런데 승우가 ‘현재 팀에서 실력 보여주는 게 먼저’라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나란히 공격 포인트 2개씩 기록한 이승우(위 사진)와 이강인. 지난 시즌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새 감독 부임 후 신뢰를 받고 있다. [사진 신트트라위던]

나란히 공격 포인트 2개씩 기록한 이승우(위 사진)와 이강인. 지난 시즌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새 감독 부임 후 신뢰를 받고 있다. [사진 신트트라위던]

‘원더키드’ 이강인도 활짝 웃었다. 14일 홈에서 열린 2020~21시즌 라리가 개막전 레반테전에 선발 출전해 도움 2개로 발렌시아의 4-2 완승을 이끌었다.

이강인은 지난해 1월 소속팀과 1군 계약을 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17경기(정규리그 기준)에 대부분 교체로 출전했다.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에서, 설상가상 일부 동료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이런 내부 사정을 밖에 알리지 않고 “다른 팀에서 새 출발 하고 싶다”고만 했다.

지난 시즌 막판, 젊은 유망주를 중용하는 하비 그라시아 감독이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이강인은 개막전에서 멀티 도움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날 18차례의 패스 시도 중 17번을 성공적으로 연결했다. 성공률 94%. 결정적인 기회를 만든 키 패스도 4개나 선보였다. 양 팀 합쳐 가장 많았다. 두 번째 어시스트가 골로 연결되자 이강인은 골을 넣은 막시 고메스의 등에 올라 “Vamos!”(가자)를 외쳤다. 주인공으로 새 출발한 자신에게 던지는 일종의 주문 같았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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