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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법무부, '김정남 독살 용의자' 北이정철 대북제재 위반 기소·체포 영장 청구

중앙일보

입력

2017년 3월 3일 추방을 위해 말레이시아 세팡경찰서를 나서는 이정철. [교도·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3월 3일 추방을 위해 말레이시아 세팡경찰서를 나서는 이정철. [교도·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북한 국적 이정철(49)을 미국 법무부가 대북제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미 사법 당국은 이씨에 대한 체포영장도 함께 청구했다.

2015년 8~2016년 8월 말레이시아서 위장회사 운영 혐의 #2017년 김정남 사건으로 체포됐다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미 법무부는 11일(현지시간) 북한 국적자인 이정철과 이유경, 말레이시아인 간치림 등 3명에 대해 대북제재 강화법 위반ㆍ금융 사기 혐의 등으로 공소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공개한 공소장과 신디 번햄 연방수사국(FBI) 특별수사관의 진술서에 따르면 이정철과 딸 이유경은 2015년 8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말레이시아에 위장회사를 설립해 북한으로 물품을 구매하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미 달러화를 세탁해 미 금융 시스템을 이용한 혐의가 적용됐다.

이정철은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체포됐다가 추방된 인물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은 그해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안정제 VX 테러를 당해 수시간 만에 현장에서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씨에게 접근한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2명과 북한 국적 남성 5명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북한 남성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했으나, 이정철은 유일하게 현지에 남아있다가 체포됐다.

2017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추방 돼 중국 베이징 공항을 경유하는 이정철. [중앙포토]

2017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추방 돼 중국 베이징 공항을 경유하는 이정철. [중앙포토]

말레이시아 당국은 2주 간 이정철을 수사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이씨는 그해 3월 이민법 위반으로 추방돼 북한으로 돌아갔다.

미측은 이번 기소에서 이정철이 최소 2015년 6월부터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정철은 말레이시아의 한 회사에 서류상 고용됐지만 임금을 지급받은 적도, 현장에서 일 하는 모습이 포착된 적도 없으며, 딸 이유경은 말레이시아의 대학교에 등록해 통역 일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말레이시아인 간치림은 이들을 도와 달러 송금 업무 등에 개입한 혐의다.

이씨 부녀는 주로 북한에 보낼 물품을 구입하는 일을 했는데, 이유경은 e메일에서 자신이 평양 소재 조선경은무역회사를 위해 일 하며 이정철이 자신의 ‘상사(boss)’라고 언급한 것으로 나온다. 이정철은 e메일로 2016년 한 베트남 소재 회사로부터 받은 19만 9700달러(약 2억 3700만원) 상당 물품 구매 송장을 북측 인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정철이 무엇을 구입한 것인지는 상세히 언급되지 않았다.

이정철은 지난해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도 등장하는데, 전문가 패널들은 이정철을 북한 대외경제성 산하 조선봉화무역총상사를 위해 활동하는 외교관이라고 판단했다. 봉화상사는 북한의 경공업ㆍ광물 수출과 해외 물자 조달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무역 회사다.

이정철은 2017년 3월 김정남 사건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추방 당하면서 중국 베이징에서 언론을 접촉한 적이 있다. 이 때 그는 “김책 공대를 졸업했고 쿠알라룸푸르에서 비누 원자재 무역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정철 명의로 임대한 아파트에서 염화물 1병과 3만 8000달러(약 4500만원)의 현금, 4대의 휴대전화와 유심카드를 발견했지만 이를 김정남 사망과 연결짓지는 못 했다.

국정원은 이후 김정남 암살 작전은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2012년부터 북한 정찰총국이 개입해 오랫동안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을 제거하라는 명령은 김 위원장의 ‘스탠딩 오더(취소될 때까지 유효한 명령)’였다고도 했다.

김정남씨가 생전인 2010년 6월 마카오 알티라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는 모습. 신인섭 기자

김정남씨가 생전인 2010년 6월 마카오 알티라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는 모습. 신인섭 기자

김정남 사망 사건은 범행에 직접 관여한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의 여성도 모두 풀려나며 미궁으로 남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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