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버티자 행운이…김광현 시즌 2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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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시즌 2승을 거둔 김광현은 ’‘내가 등판하면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AP=연합뉴스]

시즌 2승을 거둔 김광현은 ’‘내가 등판하면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AP=연합뉴스]

불운한 줄 알았는데,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행운의 사나이’였다. 김광현은 2014년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6년 만인 올해 우여곡절 끝에 빅리그 입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MLB 일정이 중단됐다. 4개월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홀로 훈련했다.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없었다.

신시내티전 5이닝 무실점 승리 #평균자책점 1.08 → 0.83 내려가 #코로나 따른 4개월 불운 털어내 #현지서 신인상 가능성 흘러나와

불운한 시간을 잘 견딘 김광현에게 행운의 시간이 온 것 같다. 7월 24일(한국시간) MLB 정규리그가 시작된 이후 연거푸 운이 따른다. 김광현은 2일 신시내티 레즈 원정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팀 타선이 23안타로 16-2 대승을 거뒀다. 어렵지 않게 시즌 2승이 됐다. 선발등판한 김광현은 5이닝 동안 3안타와 2볼넷만 내주며 무실점 역투했다. 탈삼진은 4개다. 평균자책점은 1.08에서 0.83으로 더 낮아졌다. 지난달 23일 신시내티전 1회부터 이날까지 17이닝 동안 자책점이 0이다.

슬라이더가 유난히 빛났다. 좌타자에게는 바깥쪽으로 흐르는, 우타자에게는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날 공 85개를 던졌는데, 슬라이더는 28개였고 19개가 헛스윙으로 이어졌다. 탈삼진 4개의 결정구도 슬라이더였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필살기인 몸쪽 슬라이더 활용을 아주 잘했다. 적응을 마치고 여유로운 모습”이라고 칭찬했다. SK 와이번스 시절 그라운드의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마운드에서 야수들을 향해 박수와 칭찬으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광현이 한 달 만에 MLB에 적응한 데는 대진운이 작용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정규리그에서 만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신시내티 레즈 등은 약팀이다. 아무래도 위기에 몰려도 잘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올라왔고, 가진 실력을 극대화해서 발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5경기에 등판한 김광현은 세 팀과 대결했다. 그중 강팀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 시카고 컵스(21승14패·승률 0.600) 정도다. 신시내티는 같은 지구 4위(15승21패·승률 0.417), 피츠버그는 5위(10승23패·0.303)다. 신시내티와 피츠버그는 팀 타율이 0.217로 MLB 30개 팀 중 27위다. 예정 선발 로테이션으로 가면 앞으로 만날 팀도 무난한 편이다.

송 위원은 “코로나19로 팀당 60경기의 초미니 시즌이 되면서, 특정 몇몇 팀과만 대결하게 됐다. MLB 데뷔 시즌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김광현으로선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광현도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 영어로 표현하면 ‘갓 블레스 미(God Bless Me)’였다”고 말했다.

김광현의 네 차례 선발등판 경기 평균자책점은 0.44다. 이는 평균자책점이 공식기록에 포함된 1913년 이후, 좌완 선발의 데뷔 이후 4경기 평균자책점 역대 2위 기록이다. 1위는 1981년 당시 LA 다저스 페르난도 발렌수엘아의 0.25다. 올 시즌 20이닝 이상 던진 신인 투수 중에서도 평균자책점 1위다. 평균자책점 0점대 신인급 투수는 보스턴 레드삭스 필립스 밸디즈(1승 평균자책점 0.86)뿐이다.

현지에서도 김광현의 신인상 수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MLB 칼럼니스트 제프 존스은 소셜미디어에 “김광현은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차지할 만하다”고 적었다. 세인트루이스 지역 방송사 KSDK의 코리 밀러 기자도 소셜미디어에 “이미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김광현의 내셔널리그 신인상 수상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글을 올렸다.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 골든글러브 등 다양한 상을 받았지만, 신인상은 받지 못했다. 데뷔 시즌인 2007년에는 정규리그에서 3승7패, 평균자책점 3.62로 기대만큼 활약하지는 못했다. 김광현이 만약 받게 된다면, 한국 선수가 MLB 신인상을 받는 건 처음이다. 김광현은 “신인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등판하면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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