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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호남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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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2002년 5월 16일의 늦은 밤,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1102호 특별조사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한쪽에는 청년 시절의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맞은 편에는 임상길 당시 특수2부 부부장 검사가 자리했다. 김 의원, 아니 당시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로 불렸던 그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조사받던 중이었다. 주임 검사였던 임 부부장은 꼬박 이틀 동안 원칙대로 홍걸씨를 수사한 끝에 36억원의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그를 구속했고, 김대중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 부부장은 김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목포 출신이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한동안 검찰은 호남 검사들의 독무대였다. 검찰총장, 서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등 고위직뿐 아니라 알짜 차장, 부장 자리에도 어김없이 해당 지역 출신들이 포진했다. 이들은 보은 차원에서 권력형 비리 사건들을 은폐하려다가 강한 반발을 샀고, 검찰을 망친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하지만 호남에 그런 검사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홍걸씨에 이어 홍업씨까지 구속 위기에 처했을 때 송정호 당시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의 지휘권 발동 요청을 거부한 뒤 사표를 던졌다. 그는 전북 익산 출신이었다. 뒤이은 노무현 정권에서는 전남 여수 출신의 김종빈 검찰총장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항의해 직을 내던졌다.

법무·검찰의 호남 득세 현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연됐다. 반(反)정권 수사를 틀어쥔 ‘그립’의 강도는 20년 전보다 더 강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다른 종류의 호남 검사들은 여지없이 포착됐다. 이른바 ‘추미애 사단’에 직격탄을 날리고 퇴장한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 라임펀드 수사 지휘 대가로 옷을 벗은 송삼현 전 서울남부지검장, 정권이 아끼는 검사를 원칙대로 감찰했다가 좌천돼 물러나는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주도하다가 밀려난 신봉수 평택지청장 등이 그들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보였던 20년 전의 ‘호남 정치검사’들은 어느새 잊힌 존재로 전락했다. 권력에 맞섰거나 권력을 처단했던 호남 검사들은 두고두고 재인용되면서 오랫동안 이름을 남기고 있다. 누구의 길을 따를 것인지는 남은 이들이 선택할 문제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