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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상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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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1972년 12월 충청남도 한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상소문 필사본 책자가 언론에 공개됐다. 조선 말 헌종 때인 1846년 평양기생 초월이 쓴 상소문이었다.

15살 어린 기생이 쓴 2만 자 넘는 상소문은 거침이 없었다. “좋은 얼굴을 한 큰 도적이 조정에 가득해 국사를 어지럽히니, 신하는 강도가 되고 백성은 어육(魚肉)이 되어 도탄에 빠졌다”며 조정 세태를 한탄하고, “임금의 자리에서 밤늦게 술을 마셔 눈이 게슴츠레하고 몸을 가누지 못한다”며 술에 빠진 임금을 질타했다. “3정승 6판서로부터 문무백관 미관말직에 이르기까지 문무 제신들의 행각을 낱낱이 밝혀서 고하겠다”면서 실명으로 고관들의 부패상을 조목조목 명시했다.

상소문 내용이 보도되자 정보기관이 그 소장자를 찾아가 책자를 건네 달라고 요구했다. 왜 조선시대 기생 상소문을 챙겨갔을까.

그 내용이 워낙 통렬해 조선의 국정이 아니라 마치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신체제 수립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10월) 유신헌법을 공포·시행했던(12월) 뒤숭숭한 시절 이야기다.

평범한 이들이 쓴 송곳 같은 상소문이 국민들 마음을 흔드는 일은 이후에도 종종 있었다. 대선을 앞둔 1992년엔 50대 중반의 은행 지점장이 80여 항목의 상소문을 엮은 『신문고: 제7공화국에 올리는 상소문』 책을 펴내 공감을 받았다. 2000년엔 30대인 계장급 현직 공무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신(新) 단성소’란 제목으로 쓴소리를 올린 것이 큰 화제였다. 조선 명조 때 남명 조식의 사직상소문 ‘단성소’를 모방한 이 글은 “각하는 장막에 둘러싸여 밖의 소식에 막힌 구중궁궐 속 늙은이”라며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글 ‘시무 7조’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풍자와 패러디가 봇물 터진 듯 이어진다. 이 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상소문이란 오랜 형식이 지금도 이렇게 통하는 건 글쓴이의 남다른 필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 유명 상소문엔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직설을 날리는 배포와 기개가 충만했다. 바로 그 선비정신의 미학이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