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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없던 ‘시무7조’ 은폐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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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황희가 뇌물에 간통까지?”

1452년 7월 세종실록 편찬 책임자인 정인지가 신료들을 소집했다. 사초를 정리하다 발견한 사관 이호문의 기록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영면한 황희가 뇌물로 금을 받고 무신 박포의 아내와 간통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

24년간 재상을 지낸 황희는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김종서·성삼문 등은 ‘그럴 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마침 허후가 “이호문은 사람됨이 망령하고 단정치 못하다”며 ‘가짜뉴스’임을 주장했다. 대선배의 불미스런 기록을 지우고 싶던 정인지도 마음이 동했다.

그러나 최항·정창손이 반대했다. 사초를 삭제하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이유였다. 황보인도 “한명의 반대라도 있으면 삭제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 결과 황희의 뇌물·간통 기사는 세종실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날 회의 내용 또한 단종실록에 기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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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사관의 기록에 따라 바뀌듯, 사실도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논란이 된 조은산의 ‘시무 7조’ 은폐 의혹이 그렇다. 이 글이 국민청원에 올라온 것은 지난 12일이다. 접수 직후 비공개 처리됐고 언론에서 이슈화 된 뒤 공개(27일) 됐다. 하루 만에 공개된 ‘국회선진화법 위반 한국당 의원 처벌’ 등과 대조된다.

청와대는 공개 기준이 ‘사전 동의 100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시무 7조’는 비공개 기간인 15일간 이미 4만 명이 동의했다. 은폐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7월에도 조은산이 올린 ‘다(多)치킨자 규제론’ 등이 비공개 처리된 바 있어 의혹을 더욱 키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명예훼손·욕설 등 긴 글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지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그나마 해당 청원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공개가 신속히 결정됐다”는 말은 이슈화 되지 않았으면 더 오래 비공개였을 거란 뜻 아닌가. 그 말은 어쩌면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시무 7조’가 공개된 날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린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시무 7조’는 공개 하루만에 기준을 넘겨 공식 답변 대상이다. 이번엔 대통령 상소문인 만큼 문 대통령이 직접 답하면 어떨까.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사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울러 같은 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유죄 판결 받은 변호사나 대학 게시판에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여 유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보자. 조선시대에도 상소문은 왕이 직접 읽고 답했으니.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