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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새끼야" 한달 970번 맞는다…사비로 바디캠 사는 경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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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실 공무원에게 가상의 폭행과 난동을 부린 민원인을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민원실 공무원에게 가상의 폭행과 난동을 부린 민원인을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폴리스 XX야, 너 강서경찰서지? 죽고 싶어서…공무집행 똑바로 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10시 45분경. 당시 서울 강서경찰서 까치산지구대 소속이던 임모 순경은 112 출동 신고를 받고 강서로 앞길로 출동했다. ‘비상벨이 울렸다’는 민원을 처리하는데 난데없이 임모 씨가 임 순경에게 “X새끼”와 같은 욕을 수차례 했다. 경찰이 제지하자 임씨는 “안 되겠다. 따귀 좀 맞자”라고 하면서 오른손으로 임 순경의 얼굴을 할퀴고 안경을 집어던졌다.

#지난 5월 24일 저녁 7시 30분경. 임모 씨가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했다. 음주 상태였던 그는 파출소 화장실 사용을 요구했다. 경찰관이 “소변기가 고장났다”고 안내했지만, 임씨는 “이런 XX들,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 못 하냐?”라며 파출소 유리문을 발로 찼다. 임씨는 또 폭행을 제지하는 김모 경장의 가슴을 밀치면서 목을 조르고, 또 다른 김모 경장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폭력 행사에 작아진 공권력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창옥 씨가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뉴스1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창옥 씨가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뉴스1

24일 경찰에 따르면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에 대한 폭력 행사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8·15 광복절에 광화문 거리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현행범만 30명이다. 이중 차량을 끌고 경찰관에게 돌진한 이모 씨 등 2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1명은 구속됐다. 구속된 사람은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졌던 정창옥 씨다.

경찰관이 빈번하는 폭행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 3년차라고 밝힌 한 경찰관은 지난 2018년 ‘저는 경찰관입니다. 국민 여러분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취객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20차례 넘게 폭행을 당했다”며 “얼굴에 침을 뱉는 취객부터 주먹으로 얼굴, 가슴 부위를 때리거나 심지어 따귀를 때린 취객도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공무 집행 방해로 입건된 피의자의 유형. 중앙포토

지난해 공무 집행 방해로 입건된 피의자의 유형. 중앙포토

당시 이 글은 6만3700여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경찰관 대상 폭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따. 지난해 폭행·위협 등 공무집행방해 관련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1만1652명이다. 이중 577명이 구속됐고, 다치는 경찰관도 연간 1000여명에 달한다. 한 달 평균 971번 꼴로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난해 11월부터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을 시행했다. 경찰을 밀거나 침을 뱉으면 관절 꺾기, 조르기, 넘어뜨리기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만약 주먹·발로 공격하거나 완력을 쓰면 경찰봉을 이용해 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식이다.

공무집행방해 매달 970건 

폭행당한 경찰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청와대 캡쳐

폭행당한 경찰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청와대 캡쳐

법적으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형법 제136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관공서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벌였다면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로 처벌한다. 경찰관에게 욕설을 해서 모욕을 줬다면 형법 제311조에 따라 모욕죄를 적용하기도 한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라다는 지적이다. 앞서 강서경찰서 까치산지구대 경찰관을 폭행한 임씨는 벌금형 100만원에 그쳤다. 서울남부지법은 12일 “직무 수행 중인 경찰관에게 욕설을 하고 얼굴까지 할퀴는 등 죄질이 좋지 못하다”면서도 피의자의 조울증을 감안했다.

또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경찰관 3명을 폭행한 임씨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서울남부지법은 이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벌금 20만원과 함께 징역 6월의 집행을 1년간 유예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출소·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사비를 들여 ‘바디캠(body camera)’을 구매하고 있다. 객관적인 영상을 제공해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경찰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황에 대해 경찰청은 “경고·제지에 불응하는 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며 “경찰을 가격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심각한 폭행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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