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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아파트 옆 라인도 2명 확진, 감염경로 놓고 커지는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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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6일까지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의 같은 라인 아래위층 다섯 세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8명이 나온 데 이어 27일에도 확진자 2명이 추가됐다.

확진 가구 환기구서 채취한 시료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출 안 돼 #담배연기는 환기구로 위아래 퍼져 #방역당국은 승강기 전파에 무게

이번 집단감염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비슷한 감염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원인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서울 구로구청 측은 환기구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반면에 방역 전문가들은 환기구를 통한 전파 사례가 드물다며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 층 20여 세대 ㄷ자형 복도식

집단감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아파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집단감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아파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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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는 1988년에 지은 것으로, 한 층에 20여 세대가 사는 ‘ㄷ’자형 복도식이다. 주민들은 동편과 서편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는데, 23~26일 유독 같은 라인 다섯 세대에서만 확진자가 나왔다. 전체 11~15층까지 있는 각 라인 중에서 13층까지 있는 ‘5호 라인’에서 저층 3개 세대와 고층 2개 세대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27일 추가된 확진자 2명은 바로 옆 ‘6호 라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26일 이성 구로구청장은 “특정 라인(5호)에서만 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에 환기구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들끼리 밀접 접촉한 정황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옆 라인에서도 추가 환자가 나오면서 환기구에 의한 감염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전파되려면 가가호호 환기구가 연결돼야 하고, 환자가 기침해 환풍기로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데, 실제 환기구 구조상 그런 게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기구는 아파트 옥상까지 수직으로 연결된 공기 통로를, 환풍기는 화장실·욕실 등 천장에 달린 작은 팬을 말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27일 브리핑에서 “최종적인 역학조사가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환기구를 통한 전파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권 부본부장은 환기구보다는 오히려 엘리베이터 내에서의 전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 5, 6호 라인의 경우 동편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와 밀접해 있어 주민들이 해당 엘리베이터를 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구로구청 측은 이날 브리핑에서 “화장실 환기구가 전 층에 연결돼 있고, 화장실 팬을 돌리면 에어 덕트로 공기가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며 “팬을 안 돌리는 집에선 아랫집에서 올라온 공기가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권 부본부장은 “증상이 빨리 나타난 환자가 좀 더 층수가 높은 같은 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반론을 내놓았다. 환기구를 통한 감염이라면 위아래 양쪽으로 감염이 확산해야 하는데, 아래로만 확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담배 연기는 아파트 환기구를 통해 위층은 물론 아래층으로도 이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2014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에서는 화장실에서 환풍기를 켜고 담배를 피우면 미세먼지가 아래위층 가구로 5분 이내에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래위층에서 환풍기를 켜놓았을 때는 담배 연기가 퍼지지 않았고, 환기구를 따라 옥상으로 빠져나갔다.

국립환경과학원 이중천 생활환경연구과장은 “신축 아파트에서는 화장실 환풍기 구멍이 저절로 닫혀 수직 환기구 공기가 환풍기를 통해 역류하지 못하도록 장치가 돼 있으나, 과거에 지은 아파트에는 그런 장치가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실내공기 전문가인 건국대 김윤신 석좌교수도 “환기구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환기 시스템을 조사하고 시료를 채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최대 16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고, 면직물·목재·종이 표면에서도 바이러스는 3~4일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진자가 있는 가정에서 환풍기를 틀면 실내에 있던 바이러스가 수직 환기구로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담배 연기 실험에서처럼 아래위층에서 환풍기를 틀지 않았을 경우다. 구로구청 측은 “환기구에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면 팬을 안 돌리는 집으로 에어로졸(미세한 물방울) 형태로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스 땐 환기구로 에어로졸 전파

과거 2003년 사스(SARS·급성 중증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홍콩에서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에어로졸이 환기구를 통해 이웃에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있었다. 국립환경과학원 이중천 과장은 “환기구의 오염물질이 역류하지 않도록 하려면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팬을 가동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유미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방역통제관은 이날 열린 온라인 브리핑에서 “구로구 아파트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하수구와 환기구, 엘리베이터 등을 조사하고 있다”며 “확진자 가구들의 환기구에서 시료 14점을 채취해 분석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러스 생존기간은 3~4일 정도고, 코로나19 잠복기가 보통 4~5일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환기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환기구를 통해 전파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김현예·최은경·최모란·허정원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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