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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보재정 선진국서 배운다] 上. 진료비 누수차단

중앙일보

입력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 위기를 맞자 지난 5월 정부는 서둘러 재정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진료비 심사강화,진료비 지급제도 개선,약제비 절감,본인 부담금 상향 조정 등이다.

이런 단기 대책은 대부분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재정 위기를 겪었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선진국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

지난달 28일부터 보름간 미국·영국·독일·싱가포르 등지에 취재 기자를 파견해 알아본 선진국 재정 위기 탈출법을 두차례에 나눠 싣는다.

"의료보험 재정위기와 의료비 상승은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고질병이다. "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AEI(공공정책 연구를 위한 기업연구소) 존 칼프 박사의 진단이다.

의료 신기술.신약.첨단 고가 의료장비 등장으로 인한 '테크놀로지 프리미엄' 에다 노령 인구의 증가로 의료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영국 보건부 직원인 존 미들턴도 "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7%를 의료비로 사용하고 있지만 국민의 의료요구가 높아져 향후 5년간 유럽 평균수준인 8.5%로 올릴 방침" 이라고 밝혔다.

또 독일 기업질병금고(BKK)의 다움 클리스만은 "매년 의료비가 10% 가까이 늘고 있다" 며 "과도한 의료비 지출이 기업과 노동자들의 부담을 늘려 실업자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들 선진국도 '의료비와의 전쟁' 을 선포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이고 국민의 관심도 뜨겁다.

민간보험 시스템은 미국을 세계에서 의료비 지출이 가장 많은 국가로 만들었다. GDP의 15% 가량(한국의 약 세배)을 의료비로 쓰면서도 인구의 15% 가량은 의료혜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국 볼티모어 소재 보건의료재정청(HCFA) 관계자는 "진료비를 엄격하게 심사하면 부당.허위 청구를 막을 수 있고 대체조제를 확대 실시하면 의료비를 아낄 수 있다" 고 조언했다.

미국 민간의료 보험사의 경우 진료비 누수를 막기 위해 약국에서 환자가 약을 타갈 때 서명을 요구하는 등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동원하고 있다.

또 의료기관의 부정청구 신고자에게 1천달러의 포상금을 주는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부정 청구를 막기 위해 1998년 보건부 내에 부정청구방지위원회(DCFS)를 설립했다.

DCFS는 허위 처방전을 제출하거나 값싼 약으로 조제한 뒤 비싼 약 조제로 꾸미는 약사를 적발한다. 부당 청구가 밝혀지면 청구액의 4~5배로 벌금을 부과하거나 형사처벌도 하고 있다.

미국 의사들은 처방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워싱턴 크로거 약국의 약사 엘리 스톡턴은 "의사가 상품명(brand)으로 처방해도 약사가 값싼 약(generic)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이미 법제화(의약품 대체조제법)돼 있다" 며 "값싼 약으로 조제하면 약간의 인센티브도 있다" 고 덧붙였다.

대체조제는 약효가 비슷하지만 약값이 저렴해 보험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영국.독일에서도 권장하고 있다.

대체조제 허용 범위는 정부가 정한 '약효 동등성 리스트' 에 포함된 약(같은 약효를 가진 것으로 인정된 약)에만 적용된다.

이들 나라의 약국은 대개 시민들이 자주 다니는 쇼핑센터와 대형 식품상점에 위치해 있다.

워싱턴의 케이마트약국은 얼핏 국내의 24시간 편의점 같아 보인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은 "왜 병원에서 약을 사지 않고 약국까지 왔느냐" 고 묻자 "약값이 병원보다 10% 이상 싸다" 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 의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의보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본인 부담을 다소 늘리고 슈퍼마켓 등에서 살 수 있는 의약품(OTC)을 늘려야 한다" 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영국.독일의 슈퍼마켓에서는 간단한 두통약과 감기약, 연고 등 안전성이 입증된 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국내 슈퍼마켓에서는 기껏해야 붕대나 모기약 정도를 살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양과 종류가 훨씬 많았다.

영국 보건부 관리는 "OTC가 많으면 증세가 가벼운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 진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머스약국의 루트거 게하르트 약사도 "약국에서 판매하는 약의 20% 정도는 의사 처방이 필요없는 약" 이라며 "이런 약은 전액 환자 부담이지만 환자에게 편리해서 좋고 의보조합은 약값 지출을 줄일 수 있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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