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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부동산법 봤지 않나, 거여 맘대로 통과시켜버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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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상황인데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제쳐두고 규제 위주의 법안만 신속하게 처리했다. 이 자체가 경제계에 매우 좋지 않은 시그널(신호)을 줄 수 있다.” 정부가 25일 국무회의에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는 소식에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이 한 말이다. 유 팀장은 “국회 통과 전 진지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경제 3법 아닌 규제 3종 세트” #자회사 소송 가능 다중대표소송제 #헤지펀드 등 작전에 악용될 소지 #전문가 “정책은 타이밍인데” 우려

한 기업인은 “부동산법도 그렇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라”며 “거대 여당이 (경제계에) 통보하고 바로 통과시켜 버리는 식 아니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국회 의결은 남아 있지만 의미 없는 절차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 개정안을 ‘공정경제 3법’이라고 했지만 재계에선 ‘규제 3종 세트’로 통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재계는 최악의 경영환경을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 6~7월 입법예고 기간에 열심히 의견을 냈지만 (국무회의를) 통과된 법안을 보니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형식적으로만 의견을 청취했을 뿐 정작 기업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실제로 정부가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난 20대 국회 때 제출한 내용과 같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며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 살리기에 나섰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상법 개정안 중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대해 A기업 관계자는 “헤지펀드나 특정 세력이 주가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지주회사 지분 0.01%를 모아 자회사에 소송할 수 있다”며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에 부담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지주회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는 내용도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5대 그룹에 속하는 지주회사 관계자는 “기업마다 유보자금을 투자나 신사업 발굴, 일자리 창출이 아닌 생뚱맞게 자회사 지분율 늘리는 데 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로 ‘중복수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동시에 받는 상황이 많아질 것”이라며 “조사·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원의 낭비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직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 관련 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의 법안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지면 사측의 인사권이나 징계권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분위기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은 타이밍인데 지금이 과연 ‘공정경제 3법’을 시행하기에 적합한 시기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업종변환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규제까지 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경제가 회복한 뒤에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법을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소아·강기헌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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