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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난투극, 더 큰 화 막을 대안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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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지난 6월 20일 오후 10시 15분쯤 경남 김해시 부원동 한 주차장. 주차장에 모여 있던 외국인 40여 명과 차를 타고 주차장에 진입한 또 다른 외국인 30여 명이 순식간에 뒤엉켜 난투극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외국인들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여겼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연방에서 온 고려인들이 조직 폭력 성격의 단체를 구성해 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도권에 본거지를 둔 전국구 조직 형태의 A그룹(가칭 경기 안산파) 소속 고려인 48명을 검거해 이 중 11명을 폭력 행위 등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부산 경남을 근거로 모인 B그룹(가칭 김해 동성동파) 소속 고려인 38명을 검거해 이 중 1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의 발단은 일주일 전에 시작됐다.  A그룹이 B그룹에 속한 고려인들이 자주 모이는 당구장에 찾아가 보호비 명목으로 수익의 20%를 요구하면서다. 이곳엔 사설도박장도 있었다. 그러나 당구장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

이후 A그룹이 당구장을 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B그룹이 부산과 경남에 있는 다른 고려인에게 연락해 사건 당일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무장한 채 모였다.

외국인 난투극이 벌어졌던 김해 한 주차장 모습. [사진 경남경찰청]

외국인 난투극이 벌어졌던 김해 한 주차장 모습. [사진 경남경찰청]

A그룹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려인들을 불러모아 쇠파이프와 각목을 소지한 채 김해로 내려와 양측이 충돌했다. 이들 고려인은 평일에는 주로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다 주말과 휴일에 자주 모였다고 한다.

자칫 대형 폭력 사태로 이어질 뻔했던 이날 충돌은 우연히 현장을 지나던 김해중부경찰서 김남철 경사가 호루라기를 불며 빠르게 개입하고, 잇따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보고 양쪽의 고려인들이 도망치면서 2명 정도만 다친 채 마무리됐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 주말만 되면 대구·경북과 부산 지역에서 온 고려인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구도심이 이들로 인해 활성화되기도 했지만, 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불안해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아 치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을 관리하는 김해중부경찰서 외사계는 3명뿐이다. 주말마다 경남경찰청에서 일부 인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이번 사건 조사 과정에 A그룹에 소속된 고려인 중 2명이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는 단서가 나왔다. 또 검거된 고려인 중 본국에서 폭력 전과가 있는 인원도 7~8명이나 된다.

이번 사태를 외국인 간의 단순한 충돌로 생각해 안이하게 대처하면 앞으로 더 큰 사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 외국인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위성욱 부산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