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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의 뷰티풀 바스켓볼] ‘용인 라씨’ 라건아, 한국인일까 외국인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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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한 라건아. [연합뉴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한 라건아. [연합뉴스]

프로농구 전주 KCC 센터 라건아(31)는 ‘용인 라씨’ 시조다. 미국 출신으로 본명이 리카르도 라틀리프였던 그는 2012년부터 9시즌째 한국에서 뛴다. 2018년 특별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그해 ‘씩씩한 사나이’란 뜻의 라건아(羅健兒)로 개명했다.

특별귀화, 국가대표로 뛰었는데 #외국인 분류 서머리그 출전 못해

2015년 경기 수원시에서 태어난 딸 레아는 미국인을 보면 수줍어한다. 반면 한국인 품에는 잘 안긴다. 라건아는 태극마크를 달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지난해에는 농구월드컵에도 출전했다. 현재 새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라건아는 29~3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서머 매치’에서 뛸 수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리그를 중단했던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상위 4개 팀(DB·SK·KCC·KGC)이 참가한다. 단, 국내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 라건아는 출전 불가를 통보받았다. 반면, DB의 일본인 선수 타이치는 출전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KBL측은 “라건아는 규정상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고, 타이치는 아시아 쿼터로서 국내 선수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타이치는 출전 시간이나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이 국내 선수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반면, 라건아는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에 포함된다. KBL은 2018년 이사회에서 ‘2023~24시즌까지 라건아를 외국인 선수로 분류한다’고 결정했다. 라건아 기량이 압도적으로 뛰어나 전력 균형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18일 열린 서머리그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전창진 KCC 감독은 “라건아를 2024년까지 외국인 선수로 분류하는 조항을 확인했다”며 이번 결정을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라건아는 ‘귀화해서 국가대표까지 했는데 왜 뛸 수 없냐’며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라건아는 한국 국가대표 센터다. 동시에 KBL 구단은 사실상 외국인 선수라고 합의했다. KBL 측은 “이벤트 대회라도 규정을 따르고 참가팀이 동등한 조건에서 맞붙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칙’과 ‘차별’ 사이에서 딜레마다. 한쪽 편을 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선수의 심경 토로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라건아는 13일 한 매체 인터뷰에서 “불공평하다. 차별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서 뛴 선수인데, 국내 선수가 뛰는 대회는 관중석에서 지켜만 봐야 한다. 라건아는 최고 활약을 펼쳐도 국내 최우수 선수(MVP)가 아니라 외국인 MVP로 선정된다.

라건아는 지난해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언젠가 로컬(국내) MVP를 받는 게 꿈이다. 국가대표로 꾸준히 활약하다 보면 문태종 나이(44세)쯤에는 받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 농구계 인사는 “KBL이 처음에 규정을 너무 복잡하게 정했다. 규정이 발목을 잡고 새끼를 치는 꼴이다. 처음부터 국내 샐러리캡에 넣고 투명하게 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아쉬워했다.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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