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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빨간바지 복부인, 지금은 훨씬 많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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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충무아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오페라 ‘빨간바지’의 대본가 윤미현(왼쪽)과 작곡가 나실인. 김성룡 기자

서울 충무아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오페라 ‘빨간바지’의 대본가 윤미현(왼쪽)과 작곡가 나실인. 김성룡 기자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 부동산을 건드린 오페라가 나온다. 노래의 가사, 대사가 땅과 집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그리고 있다. 작곡가 나실인(41)·대본가 윤미현(40)씨가 만든 국립오페라단의 3막짜리 신작 ‘빨간 바지’(28·2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빨간 바지는 1970~80년대 개발되던 강남땅의 딱지를 모아 재산을 뻥튀기한 나팔바지 복부인들의 은유다.

작곡가 나실인, 대본가 윤미현 #한국인 부동산 욕망을 오페라로 #“투기 열풍, 50년 전과 똑같다”

나실인·윤미현씨는 “지금 부동산만큼 모든 사람의 이야기인 소재는 찾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땅과 아파트를 많이 가진 사람, 가지고 싶어한 사람들 모두가 결국 손에 쥔 것 없이 끝나는 결말을 만들었다.

배경은 1970년대 강남구 개포동. 빨간 바지로 유명한 주인공, 복부인이 되고 싶은 가난한 여인, 이들을 각자의 목적대로 이용한 인물들이 얽힌다.

윤미현씨는 “70년대와 지금이 똑같다. 모든 계층의 모든 사람이 부동산을 보고 달려가지만 욕망을 위한 욕망일 뿐 실체가 과연 있는 걸까 질문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실인씨는 “집을 스무채 가진 사람도, 월세를 사는 사람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이 편해지게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부동산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나씨는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개포동 비닐하우스촌 출신이고, 재개발될 때 복부인의 눈에 띄어 정부가 된다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윤씨에게 했다. 대본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인 여주인공이 더해졌다. 역시 비닐하우스촌 출신인 가난한 여주인공은 복부인을 꿈꾼다.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그 땅값이 올라 대출을 갚고,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작품은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이 욕망이 얼마나 일반적이고 본능적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나씨는 “작품을 위해 여러 자료를 조사했을 때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욕망과 갈증을 느낀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실 이 작품 초고는 지난해 여름 완성됐다. “70년대 개포동 흙바닥의 비닐하우스를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부동산 이야기였는데 마치 2020년 8월 대한민국의 인간들을 그려낸 것처럼 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윤씨는 “70년대 그대로인 지금을 보면서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라며 “달라진 게 있다면 빨간 바지가 훨씬 많아져 모든 시민이 그 옷을 입고 있다는 게 아닐까”라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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