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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도 ‘악플’ 아프다…연예 기사처럼 댓글 폐지 요구 봇물

중앙일보

입력

“다이렉트 메시지(인스타그램 DM)로 ‘돈 떨어졌다고 배구판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는 악플이 왔더라고요”

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씨가 생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는 최근 고씨가 스포츠 멘탈 코치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지난달 12일 경기도 광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고씨가 지난 1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되기 3주 전이다. 스포카도 관계자는 “악플로 고통받는 선수가 더는 없길 바라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영상을 올린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에 올라온 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씨의 생전 인터뷰. [유튜브 '스포카도' 캡쳐]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에 올라온 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씨의 생전 인터뷰. [유튜브 '스포카도' 캡쳐]

고씨가 평소 ‘악플’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성 댓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고씨는 2013년 현대건설에 입단해 백업 레프트로 활약했다. 팀 사정상 지난 2월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꿨다. 당시 부진을 겪던 고씨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결국 한달 뒤인 3월 팀을 떠났다. 경찰이 확보한 메모장에는 고씨가 악플로 고통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선수들 “스포츠 기사 댓글 없애달라”

스포츠 선수를 향한 악성 댓글 세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오지환은 지난 2018년 시즌을 앞두고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가 ‘병역 기피’ 오해를 받으며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가족에 대한 악플까지 쏟아지자 오지환은 지난 3일 에이전시를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날 배구선수 이재영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족에 대한 욕설이 담긴 악성 메시지를 공개하며 “내가 다른 건 다 참겠지만 이건 아니다”라며 “사람이 어쩜 저러냐”고 토로했다.

지난 3일 배구선수 이재영씨가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공개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 3일 배구선수 이재영씨가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공개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스포츠 선수들은 승패가 나뉘는 경기 특성 탓에 악성 댓글에 노출되기 쉽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퍼포먼스를 하는 엔터테인먼트 종사자와 달리 스포츠 선수는 점수로 평가받는다”며 “이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우승 여부가 걸려있다 보니 선수들은 악성 댓글을 받기 쉽다”고 말했다.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는 “아름답게 지는 법도 중요한데 승리 지상주의가 보편화한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시합에서 진 운동 선수들은 노골적 화풀이가 담긴 악성 댓글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피해 사례가 줄을 잇자 스포츠계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로배구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은 4일 선수 인권 보호 강화를 위한 3대 방안을 발표했다. 포털사이트 스포츠 뉴스 댓글 기능 개선 요청과 홈페이지에서 운영하는 선수고충처리센터의 역할 강화, 선수 심리치료와 정신 교육 강화가 담겼다.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승민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도 같은 날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하루하루 선수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되새기며 많은 부분을 감내하는 선수들을 위해 심각한 악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부탁드린다”며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 법안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 4일 유승민 IOC 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지난 4일 유승민 IOC 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처벌 강화 목소리

악성 댓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훈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악성 댓글에 따른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약식기소되고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징역형이 나오더라도 집행유예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악플이 큰 범죄라는 인식이 아직은 없기 때문에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에 맞춰 처벌 수위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2월 악플 범죄에 대해 최대 3년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양형기준안을 의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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