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준비없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에 국민은 고통스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 중 상한제와 갱신 청구권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세시장은 대혼란이다. 세금은 크게 늘었는데 법 통과로 전세보증금은 그만큼 올리지 못하고, 세입자 요구대로 4년(2년+2년) 동안 전세를 주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아 집주인들이 속속 전세를 거둬들이는 탓이다. 대전(대치동 전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세 수요가 몰리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현재 전세 물건이 씨가 말랐다. 그나마 매물로 나온 전세는 하루이틀 새 1억~2억원씩 값이 뛰어 세입자들은 이래저래 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국내 임대차 시장의 62%에 달하는 높은 전세 의존도 덕분에 상당수 세입자는 지금까지 값비싼 월세를 내지 않고도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가 귀해져 주거비용이 껑충 뛸 판이다.

정부 준비 부족, 신고제 내년 6월에나 시행 #집주인·세입자 갈등에다 가격 왜곡 불 보듯

법 시행 전후로 이미 벌어졌거나 예상되는 이런 부작용과 별개로 정부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졸속 입법을 한 탓에 빚어질 혼선은 또 다른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월세 신고제가 필수다. 전셋값과 임차 기간 등 데이터가 있어야 이를 토대로 가격 급등 등을 막아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국토부엔 전·월세 신고 관리를 위한 시스템이 없어 구축 후 내년 6월에나 신고제의 시행이 가능하다. 상한제와 갱신 청구권은 당장 오늘부터 시행인데 투명한 거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내년 6월 이전까지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다툼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격 왜곡은 더 큰 문제다. 전세 매물이 품귀를 빚는 와중에 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니 기존 세입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할 땐 주변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내놓아 결과적으로 전·월세값이 급등할 우려가 크다. 이러니 이미 전·월세를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임대차 3법은 세입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리로 내쫓는 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무책임한 발언만 늘어놓고 있다. 20대 국회 민주당 국토위 간사를 지낸 이원욱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31년 전 1년에서 2년으로 임대차 기간을 연장했을 때 15~20% 임대료가 오른 것처럼 이번에도 일시적인 인상 효과는 있을 것” “월세 전환은 이미 지속돼 온 현상”이라며 세입자가 짊어져야 할 주거비용 급등을 대수롭지 않은 듯 발언했다. 당장 살 집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구르는 세입자에게 고통을 떠넘기려고 민주당은 위헌적인 소급 입법 무리수까지 둔 것인가. 시장에 무지한 거대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청부 입법에 나선 사이 이렇게 국민만 고통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