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4급이상만 수사" 당정청 檢수사권 조정에 검사들 발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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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추 장관, 김태년 원내대표.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추 장관, 김태년 원내대표. [연합뉴스]

당·정·청이 30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줄이는 내용의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불리는 수사를 공직자의 직급, 뇌물 수수금액 등을 기준 삼아 기계적으로 나눠놓은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직자는 4급 이상만, 뇌물은 3000만원 이상만 수사하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이날 발표한 개혁안의 취지는 '권력기관 권한의 균형 있는 분산과 민주적 통제'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올해 초 검찰청법 개정으로 이미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와 대형참사 등 6개 분야로 한정된 상태다.

당·정·청은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공직자에 대한 직접 수사는 4급 이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뇌물 사건은 수수금액이 3000만원 이상,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적용되는 경제 범죄와 사기·배임·횡령 사건은 피해 규모가 5억원 이상이 돼야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해진다.

국민 다수 피해 사건은 법이 정한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더라도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논의됐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빠졌다. "정권에 편향된 수사만 골라 승인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위한 우려가 큰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검 "시행령 확정되기 전까지 적극 의견 개진"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의 당사자인 대검찰청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이 개별적 입장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검찰은 시행령안이 확정될 때까지 형사사법 절차에서 인권 보호,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하지 않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 "탁상공론" "사법제도 실험, 피해는 국민에게" 

다만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 실무에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 검찰 간부는 "가령 국회의원의 1000만원 뇌물 수사를 하다 보면 이 금액이 1억원이 될 수도 있는데 기계적으로 기준을 정해놓는 것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검찰은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복잡한 법리 검토가 필요한데, 법률 전문가가 아닌 경찰에만 맡겨서는 수사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검사장은 "대형 화재 사건의 경우 법리 검토가 상당히 까다로워 경찰에만 맡기기 어렵다"며 "수사권 조정 논의가 나온 이후 검경이 합동 수사를 하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데, 검경이 협력하는 모델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을 상대로 사법제도를 실험하는 행태는 매우 부적절하고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며 "하고 싶은 대로만 밀어붙인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정·청이 검찰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지난 5월 대검찰청 검찰개혁추진단이 일선 청을 방문해 검사들과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과 이번 안은 전혀 다르다"며 "한쪽 이야기만 듣고 수사권이 조정된다면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 검찰의 공직자 수사 대상은 4급만으로 한정된다. 공수처는 3급 이상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맡아서다. 이렇게 되면 권력형 비리 수사가 와해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요한 수사 과정에서 생기는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대검과 경찰청 사이에는 정기적인 수사협의회가 설치된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검사는 “수사는 속도가 생명인데, 매번 협의해야 한다면 수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서울 서초경찰서(앞쪽 건물) 뒤로 보이는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서울 서초경찰서(앞쪽 건물) 뒤로 보이는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이번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 범위에 대해서만 공개됐지만, 앞으로 형사 절차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수사준칙(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 과정에 필요한 사항을 명시하는 수사 준칙은 이번에 공개된 게 없다"며 "수사 준칙이 국민과 직접 관련이 있어서 이 부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입장이 더욱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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