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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없는 거여 독주, 정의당도 “국회가 민주당 의총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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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추가 상정 기립 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왼쪽 셋째)이 윤호중 위원장(왼쪽)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추가 상정 기립 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왼쪽 셋째)이 윤호중 위원장(왼쪽)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발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를 당정 협의로, 본회의를 민주당 의원총회로 만드는 행태는 민주주의를 벗어난 것이다.”

여야 합의로 절충안 내는 상임위 #이례적 연이틀 기립표결 강행 #“당내 견제마저 없는 민주당 모습 #일본 자민당 1.5당 체제만도 못해” #정부 책임자에 현안질의 대폭 축소 #장관들은 여당 의원들에게도 퉁명

더불어민주당의 우군이랄 수 있는 정의당의 강은미 원내대변인이 한 발언이다. 그는 이어 “국회는 민주당이 원하는 날짜에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만 처리하는 거수기가 아니다. ‘일하는 국회’가 ‘민주당만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8~29일 상임위에서 176석 민주당이 18건의 법안을 강행처리한 걸 지켜본 소회다.

총선 대승한 민주당, 합의제 장치 무력화 

이미 국회의장 단독 선출과 18개 상임위원장 싹쓸이란 ‘신기원’을 보였던 민주당은 개원 국회에서 개별 법안의 상정부터 의결까지 몇 시간 만에 끝내는 ‘완력’도 자랑했다. 국토교통위에선 6건을 처리하는 데 60분 걸렸을 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7년 이후 국회는 다수결 원리 말고도 ‘정당 간 합의’라는 절충을 지향해 왔는데,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이 합의제 장치를 모두 무력화하고 있다”면서 “당내 견제마저 없는 민주당의 모습은 일본 자민당의 ‘1.5당 체제’만도 못한 ‘1당 정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실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회’를 경험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의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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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가 담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에서 처리된 건 29일 낮 12시32분이었다. 하지만 2시간30분 전인 오전 10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일부 법안이 29일자로 ‘대안반영폐기’ 됐다고 표시됐다. ‘대안반영폐기’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을 때 소관 상임위에서 이를 병합해 논의한 뒤 위원회 차원의 단일 법안(대안)을 만들고 나머지는 없앤다는 의미다. 더욱이 법사위가 열리기 30분도 전이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오전 긴급 의원총회에서 “소위와 전체회의도 열지 않고 민주당이 발의한 유사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병합된 것”(김도읍)이라고 반발했다. 법사위 간사인 김 의원은 이날 법사위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당에서 검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10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화면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대안 반영돼 폐기됐다고 돼 있다(박스 친 부분). 법사위에서 관련 의결을 한 건 낮 12시32분이었다. [국회 홈페이지 캡처]

29일 오전 10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화면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대안 반영돼 폐기됐다고 돼 있다(박스 친 부분). 법사위에서 관련 의결을 한 건 낮 12시32분이었다. [국회 홈페이지 캡처]

이에 대해 박장호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오늘 새벽에 백혜련 의원실로부터 주택임대차보호법 6건에 대한 대안에 서면동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면동의안을 접수하면 의안정보시스템에 기안하게 돼 있는데, 의결 전이라도 ‘대안반영폐기’로 표기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구조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행정착오였고, 불찰이 있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날 법사위에선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기립 표결’로 상정했다. 전날 기재위·국토위와 같은 방식이다. 기립 표결 자체는 국회법에 규정된 방식이긴 하다. 전자투표가 주로 사용되는 본회의와 달리 상임위에서는 이의 유무를 묻는 표결 방식과 손을 드는 ‘거수 표결’, 그리고 ‘기립 표결’ 등을 혼용한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기립 표결’로 안건이 통과된 것은 4년간 4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8월 정치개혁특위에서 의결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포함해서다. 1년에 한 번꼴로 벌어지던 일이 이틀 연속으로 10여 차례 계속된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견제 원리 무너진 듯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상임위는 관행상 여야 간사가 합의해 절충안을 만들기 때문에 극소수 의원이 반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의 없습니까’ 묻고 넘어갔다”며 “한두 번도 아니고 모든 상임위가 약속이나 한 듯 기립 표결하는 건 처음 본 풍경”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상정 후) 법안소위에서 하루이틀 논의하고 표결에 부쳐도 이번 국회 안에 처리할 수 있는데 너무 강하기만 하다”고 우려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답변 태도는 민주당에서도 논란이 됐다. 박주민 의원이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해 두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한 것에 대한 무성의한 발언 때문이다. ‘2+2 세입자 보호’ 제도 시행 전 집주인이 미리 월세를 올릴 가능성과 4년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전·월세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박 의원=“혹시 이런 두 가지 시중의 우려에 대해 검토해본 바가 있나.”

▶추 장관=“(국회에서) 대안을 논의하면서 경과 규정을 어떻게 둘 것인지, 존속 중인 계약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심도 있게 논의해 주면 좋겠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 것에 ‘국회가 잘하라’고 면박을 준 셈 아니냐”며 “우리가 아무리 여당이어도,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 원리 자체가 무너진 듯했다”고 말했다. 전날 국토위에서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주택공급 방안이 언제쯤 발표되느냐”는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일단 법안이 먼저 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입법 속도와 반비례해서 정부 책임자에게 현안을 묻는 시간은 대폭 축소됐다. 전날 국회 행안위에서 박재호 민주당 의원(부산)이 부산 지역 수해와 관련한 현안질의를 마치자, 민주당 소속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은 “아주 긴급한 사안을 2명 정도만 현안질의 하라. 그 외 다른 현안질의는 다시 여야가 합의해 업무보고 형태로 하자”고 말했다.

오현석·하준호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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