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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실직한 '허삼관' 속출…中서 헌혈 줄자 '매혈' 성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작가 위화는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피를 팔며 굴곡진 중국 역사를 살아가는 극빈 가장 '허삼관'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현대판 허삼관으로 불릴만한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베이징 헌혈량 평소 3분의 1 수준 #병원 앞에서 매혈 브로커들 호객 #1회 수혈 34만원…75%가 브로커 몫 #불법이지만 일당 2.5배에 매혈 나서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헌혈량이 줄자 중국 각지에서 매혈(賣血)이 기승을 부린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26일 현지발로 보도했다.

지난 2월 13일 마스크를 쓴 중국 베이징 적십자센터 직원들이 이동식 헌혈대를 세우고 헌혈자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서 헌혈이 급격히 줄면서 매혈이 성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13일 마스크를 쓴 중국 베이징 적십자센터 직원들이 이동식 헌혈대를 세우고 헌혈자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서 헌혈이 급격히 줄면서 매혈이 성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문에 따르면 요사이 베이징의 종합병원 앞에는 매혈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쉐터우(血頭)로 불리는 이들 브로커는 병원 문을 나서는 사람을 붙잡고 "피가 필요한가. 안전한 혈액을 바로 준비할 수 있다"고 호객을 한다.

1회 수혈량은 400㎖. 환자는 2000위안(약 34만원)을 내는데, 이중 매혈자가 손에 쥐는 건 500위안(약 8만5000원), 나머지는 모두 쉐터우 몫이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지던 지난 1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헌혈 활동이 위축되면서 중국 전역에서 피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경우 1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헌혈량이 예년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심 번화가에서 헌혈 활동을 재개했지만 "긴급한 중증환자 수술에 쓸 분량뿐"(베이징 적십자센터 담당자)일 정도로 사정은 여전히 나쁘다.

반대로 코로나19가 야기한 경기 악화는 매혈을 부추긴다. 특히 농촌에서 올라와 하루 벌이로 먹고 살던 농민공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매혈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둔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도 크게 늘었다. 일용직 자리조차 구하지 못해 매혈에 나서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AP=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둔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도 크게 늘었다. 일용직 자리조차 구하지 못해 매혈에 나서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AP=연합뉴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구인 정보를 얻으려다가 환지의 지인으로 위장한 쉐터우의 꾀임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매혈 조직은 '18~50세, 혈액 제공자 모집'이란 제목과 연락처만 남기면 쉽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100~200위안 정도의 일당을 버는 농민공에게 1회 500위안은 큰 금액이다. 한 브로커는 "하루에 2명 정도 매혈 알선을 한다"고 신문에 밝혔다.

중국에서 매혈은 오래된 사회문제다. 1990년대 매혈이 성행하면서 채혈용 주사를 통해 HIV에 감염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도 마을 전체가 매혈에 나선 매혈촌이 나올 만큼 만연했다.

결국 중국은 1998년 헌혈법을 제정해 매혈을 금지시켰다. 이후 수혈용 혈액은 무상으로 기증한 헌혈로만 충당하게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헌혈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다시 매혈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경기 둔화로 고용 악화가 계속되면 음성적인 매혈 시장이 계속 자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중국사회에서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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