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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소독제 업체 사장이 "경쟁자 더 많아야"라고 말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마스크와 더불어 소비자 수요가 급격히 커진 제품이 있다. 손 소독제가 그렇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국내 손 소독제 시장 규모는 연 100억원 대 규모에 그쳤다. 국내에선 손 소독제를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도 많지 않았다.

종합병원 손 소독제 시장 7할 차지한 코셀케어 이원일 대표 인터뷰

2006년 설립된 코셀케어는 손 소독제를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국내 업체다. 클레시스(Clesis)라는 자체 브랜드도 있다. 국내 종합병원 손 소독제 시장의 7할가량을 이 회사 제품이 차지한다. 지난해 매출은 37억1100만원. 이 회사 이원일(55ㆍ사진) 대표는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손 소독제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기업들이 치고 빠지는 형식으로 시장에 진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셀케어 이원일 대표가 자신이 만든 손 소독제를 보이고 있다. 사진 코셀케어

코셀케어 이원일 대표가 자신이 만든 손 소독제를 보이고 있다. 사진 코셀케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돌 때만 반짝 손 소독제를 생산하다가 감염병이 잠잠해지면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미국 대형마트 등에는 샴푸처럼 손 소독제가 매대에 비치돼 있고 소비자들도 이를 구입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겼지만, 우리는 인제야 손 소독제의 중요성을 일반 국민이 깨닫게 됐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더라도 제대로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손 소독제 시장에 더 많이 진입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손 소독제에 주목한 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외국계 기업에 몸담고 있던 당시 미국 출장길에서 손 소독제를 처음 접했다.
귀국한 뒤 몸담고 있던 회사에 손 소독제 시장 진출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장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아예 퇴사한 뒤 자신이 손 소독제 관련 업체를 세웠다.

제품 생산해줄 공장 구하지 못해 속태우기도 

‘사업이 되겠다’ 싶었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회사 설립 초기 제품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만들어줄 공장을 구하지 못해 10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생산을 부탁했다. 막상 제품이 나와도 국내에는 소독제 류의 살균 효과 데이터를 인증해주는 기관도 없었다. 반면 종합병원들은 수입제품과 동등한 수준 이상의 품질과 효능 데이터를 요구하는 등 장벽이 높았다. 결국 그는 직접 의학 관련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생산한 손 소독제 사용 전후의 살균 효과 관련 데이터를 축적했다. 높디높던 종합병원의 문턱에도 꾸준히 도전했다.

신종 플루·메르스 사태 겪으며 사업 키워

손 소독제 품귀 현상에 가짜 손 소독제 9만여개를 만들어 수출하려다 적발되는 일도 생겼다. 지난 3월 월 해양경찰들이 무허가 손 소독제를 만들어 이중 일부를 중국에 서출한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무허가 손 소독제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 소독제 품귀 현상에 가짜 손 소독제 9만여개를 만들어 수출하려다 적발되는 일도 생겼다. 지난 3월 월 해양경찰들이 무허가 손 소독제를 만들어 이중 일부를 중국에 서출한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무허가 손 소독제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신종 플루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사업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까다로운 종합병원들이 이 회사 제품을 선택한 건 가격 경쟁력 못잖게 성능이 좋아서다. 사실 손 소독제는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대단한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은 아니다. 그는 원재료부터 신경 썼다. 사용감을 좋게 해주는 유럽산 점도 증진제나, 미국 기준에 맞춘 알코올 등 원재료를 고급화했다. 이 대표는 ”반짝 손 소독제 시장에 들어오는 업체들은 가격을 낮추려 저가 원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사용감이 좋지 않다”며 “이런 제품을 써본 소비자는 결국 손 소독제 자체를 외면하게 된다”고 했다.

코로나19 창궐 예측하고 원·부자재 비축  

이 대표는 올해 초 이미 코로나19가 국내에서도 창궐할 것이란 걸 예측했다고 한다.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촉’이 생긴 덕이다. 덕분에 그는 올 초에 이미 알코올과 제품 펌프 등 원부자재를 평소보다 5배 이상 비축해 놓고 수요에 대응했다.

중소기업이지만, 창고 두 곳을 빌려두고 제품과 직원들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원칙도 세워뒀다. 한쪽 창고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와도 다른 창고에서 필요한 손 소독제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납품에도 순서가 있다 

그는 “올봄에는 전화기가 터져나갈 만큼 많은 주문이 들어왔지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제품을 납품했다”고 한다. ‘종합병원-외교부-인천국제공항’의 주문부터 채운 다음 다른 수요에 대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돈을 더 벌고자 했다면, 쇼핑몰이나 일반 소비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게 나았겠지만, 종합병원이나 공항에 손 소독제가 없으면 방역 자체가 뚫리는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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