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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냐 시장원리냐 기준합의부터 해야

중앙일보

입력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는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전부터 예고됐었다.

당시 보험수가 인상과 조제료.처방료 신설, 그리고 고가약 처방등으로 예상한 올해 적자규모는 4조원에 이르렀다.

적어도 의료보험 재정을 생각했더라면 향후 6개월간의 예상 지불금을 축적해 놓고 의약분업을 시작했어야 옳다.

이렇게 막대하게 재정이 소요되는 데도 의약분업의 긍정적 효과는 10여년이 흘러야 나타난다. 반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환자가 느끼는 것은 불편함뿐이다.

좋은 제도지만 도입시기를 범(汎)국민적 합의하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사태는 수십년에 걸친 파행적 의료제도에 졸속 의약분업이 겹쳐 발생한 당연한 결과다. 현재로선 의사.약사 등의 이해가 얽혀 어떤 정책도 만족스럽지 않다.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몇가지를 살펴보자.

2만원 이하 소액진료는 본인이 부담하자는 안이 있다. 총 의료비 지출의 25%에 해당하는 보험재정을 지키면서, 보험의 보장성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은 2만원조차 부담이 되는 서민은 중병에 걸려야만 병원을 찾는 의료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필수진료만 현행 보험제도가 맡고 나머지는 사보험을 도입하자는 안도 나온다.

보험재정 안정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80% 이상이 민간병원인 점을 감안하면 문제점이 있다.

병원들은 앞다투어 사보험 혜택을 받는 고가진료에만 치중해 건강보험 환자가 의료보호 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진료비 청구심사를 강화해 보험재정의 누수를 막겠다는 주장도 근본취지는 좋다. 그러나 시행과정에서 의사들이 반발하고, 편법진료가 나타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올라가 풀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의료에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의료를 시장원리에 맡긴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4%란 천문학적 의료비를 치르고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15%나 된다.

물론 고급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공공의료를 근간으로 하는 유럽은 이보다 절반 정도의 사회적 비용으로 전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는다. 물론 고급의료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미국보다 떨어진다.

의약분업은 선진국 의료제도다. 이를 시행하는 국가들의 의료비 부담률은 GDP의 8~15%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비 총액은 의약분업 시행 전 GDP의 5%였고, 올해 1월 직장의료보험료 20%, 지역의료보험료 15%가 인상돼 현재 5.7%다.

즉 의약분업을 지속하려면 국가와 국민이 지불해야 할 의료비 부담은 앞으로도 지금의 두배 가량은 돼야 한다. 과연 이렇게 폭증하는 의료비 증가를 현행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있을까.

따라서 정부가 책임지는 의료보장의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반드시 누려야 할 기본진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국가자원의 몇%를 의료재원으로 투입해야 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보험료 지불에 대한 비용효과도 철저히 분석해 결정해야 한다. 예컨대 의학적으로 이상적인 혈압은 1백20/80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학자들이 결정한 현재 고혈압 치료기준은 1백40/90 이상일 때다.

의학적인 이상수치만을 고려해 치료기준을 정하면 사회가 지불하는 의료비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재원 충당을 위해 병원과 건강관련 기업에서 거둔 세금을 건강보험으로 환원하는 방법도 고려해 봄직하다.

보험료 인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주세.담배세는 물론 병원.의원.약국.제약회사.건강보조 식품 등에서 징수한 소득세를 국민 건강을 위해 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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